4세기 콘스탄티누스 등장 이후 평화주의 쇠퇴하고 전쟁 정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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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콘스탄티누스 등장 이후 평화주의 쇠퇴하고 전쟁 정당화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2.03.0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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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초기 기독교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해(15)

지금까지 초기 기독교회에서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입장에 대해 소개했는데, 초기 기독교회는 ‘평화주의’ 입장을 따랐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학자의 견해가 일치한다. 평화주의(pacifism)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이나 살상,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인데, 평화주의에는 3가지 유형이 있었다.

첫째는 인도적 평화주의(Humanistic Pacifism)인데, 전쟁이나 폭력 행사는 인간 생명의 살상 혹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라는 점에서 허용될 수 없고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실용적 평화주의(Pragmatic Pacifism)인데, 폭력보다는 비폭력이 사회정치적으로 효율적이기 때문에 비폭력을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셋째는 기독교회가 말하는 평화주의인데, 성경과 예수님께서 가르치셨고 초기 기독교회가 따랐던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폭력과 전쟁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초기 기독교가 지향했던 평화론은 기독교평화주의(Christian Pacifism)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 곧 교부들은 군복무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가르쳤던 것이다.

그런데 4세기 콘스탄티누스의 등장 이후 기독교 평화주의는 쇠퇴하고 정당 전쟁론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평화론이 대두한다. 그래서 베인톤은 “콘스탄티누스의 즉위와 함께 교회사에서 평화주의 시대는 끝났다”고 지적했다.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313)과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기독교의 국교화(380)는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교회가 군복무를 거부하여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으나 4세기가 시작되면서 로마의 군대 안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군에서 우상숭배의 위험은 사라졌고, 군복무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된 이후 캐둑스(Cadoux)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의 십자가 표시는 제국군대의 행운과 승리를 가져다주는 상징이 되었다.”

제국의 종교가 된 이상 기독교가 제국의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거역할 수 없었다. 결국 평화주의는 퇴조하고 비폭력 무저항 입장은 서서히 후퇴하게 된다.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이후 변화가 나타났다.

314년의 아르레스회의(the Council of Arles)는 “평화의 시기에 자기 무기를 버리는 사람은 추방한다”고 결정했다. 350년 경 아타나시우스는 “살인은 허용되지 않지만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것은 합법적이며 칭찬할만하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밀란의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전쟁에서 이교도들을 대항하여 조국을 지키거나 집에서 약자를 보호하는 것, 혹은 도적으로부터 동료를 구하는 것은 의로운 일이다”라고 했다(Heering, 58, 59).

416년 황제 호노리우스(재임 393~423)는 비기독교인들이 군인이 되는 것을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그래서 교회는 ‘군사적인 황제의 국가교회’(a militant imperial state church)로 전락했다. 이런 점을 볼 때 콘스탄티우스의 등장 이후 4세기는 교회역사에서 변혁의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제임스 톰슨(James Westfall Thompson, 1869~1941)은 4세기의 변화를 이렇게 지적했다. “4세기 교회의 승리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경하할만한 승리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와 더불어 통치계급, 부유한 사람들, 세상적인 것들이 교인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면서 그들의 도덕과 도덕적 가치, 사회적 표준, 그들 행동의 도덕적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 결과는 교회와 세상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종교가 정치나 정책에 종속되고, 주변에 있던(marginal)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와 교회의 이상을 약화시키고, 졸부의 타락한 영향력이 나타나고, 영적인 경직화를 초래하였다. 교회는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이교도 집단의 지지와 보호를 위해 세상에 많은 것을 양보했다.”

결국 교회는 평화주의를 포기하고 상대 평화주의 혹은 정당 전쟁론을 추구하게 된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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