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남을 회복하고 성도들과 복음 들고 나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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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남을 회복하고 성도들과 복음 들고 나가야지요”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2.02.2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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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사명선언문
하대원교회 홍완표 목사 / 성남시기독교연합회 직전 대표회장
하대원교회 홍완표 목사는 코로나19 이후 위축됐던 성도 간 교제와 복음전파의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대원교회 홍완표 목사는 코로나19 이후 위축됐던 성도 간 교제와 복음전파의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생 교회를 가본 적이 없던 아버지가 혼자서 동네 교회를 둘러보셨다는 거예요. 목사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월급은 또 얼마나 받는지 직접 알아보셨답니다. 꼭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야겠냐고 말씀하셨지만, 결국에는 기왕 하는 거 열심히 공부해보라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목회자가 되겠다는 아들의 말에 생전 처음 교회라는 곳에 가서 대체 목사는 뭐 하는 사람인지 먼저 살핀 아버지였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의 길을 인정했다. 

처음 아들 홍완표 목사(하대원교회)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완강하게 반대했다. 외래종교에 배타적인 제주도 출신인데다 전통적인 불교 집안에서 성장한 홍 목사 역시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될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같은 제주도 출신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25살 나이에 상경해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홍 목사는 신앙생활을 먼저 시작한 아내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기 시작해, 신학공부까지 결심할 정도로 믿음이 성장했다. 

목회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아들은 자신의 뜻과 각오를 부모님께 자세히 편지로 전했다. 아마도 아버지는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8남매 중 가장 사랑스럽고 귀한 막내아들이 육지로 나가더니 예수쟁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아직 자리도 잡지 못했는데, 목사라는 어려운 길을 가겠다니…. 크게 야단맞을 각오까지 했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아들이 가는 길을 인정해 주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걱정대로 신학도의 길은 험난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자녀들도 있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아내는 어느 슈퍼마켓 처마 밑에 양해를 구하고 과일을 팔았다. 

“직장을 다녔던 사람도 아닌데 가정주부가 장사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 때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오직 한길이었죠. 그러다 전도사 시절 교회를 개척하고 본격적인 목회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건축의 비전으로 성도들 마음 모아
첫 개척지는 경상북도 경산이었다. 30대 중반이었다. 제주도 출신에 서울에서 신학교를 다니던 그는 생면부지의 땅으로 향했다. 여느 개척 목회자들처럼 첫 교인은 가족이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두고 말씀을 선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영혼 구원에 대한 사명감으로 가득한 때였다고 할 수 있지요. 한 영혼이라도 전도해야겠다는 사명이 투철했습니다. 사명과 달리 개척 목회는 쉽지 않았습니다. 힘든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모르는 누군가를 통해서 돌보아 주셨습니다.”

홍완표 목사는 2000년 지금의 성남 하대원교회로 청빙을 받아 목회 사역을 이어갔다. 청빙을 받아와서 본 교회는 여러 면에서 열악했다. 당회를 모이기도 힘들었고 교회 재정도 약했다. 그 때 홍 목사는 하나의 비전 선포했다. 바로 ‘교회 건축’. 제직들에게 교회를 건축해보자고 제안했다. 서두르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로 했다.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래도 건축을 위해 기도하면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기도로 준비한 끝에 건축을 시작했고, 건축 후 1년 만인 2010년에 입당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교회 건축이 목회자에게는 큰 스트레스지만, 그 때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목회자로서 계획한 것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홍 목사 역시 그 길에 대해 확신하지 못할 때도 종종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했고, 지금까지 목회자로 살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동체 안에 분쟁이 있을 수 있고 의견이 나뉠 수도 있지요.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성도들이 한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 목회를 지지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제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셨습니다. 꾀부릴 줄 모르는 요령 없는 목사를 불쌍히 여긴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살피고 도와주신 것이 아닐까요?”

홍완표 목사는 성남시기독교연합회 대표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성남시의회와 성남시청을 동분서주 하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내 작은 교회를 돕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사진=성남시의회
홍완표 목사는 성남시기독교연합회 대표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성남시의회와 성남시청을 동분서주 하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내 작은 교회를 돕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사진=성남시의회

이제 ‘위드 코로나’ 목회할 때
홍완표 목사는 지난해 성남시기독교연합회를 이끄는 대표회장을 지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역 교회들이 가장 힘들 때였던 만큼, 대표회장 역할에 따라 연합회 사역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시기였다. 그는 ‘작은 교회 살리기’에 집중했다. 

“성남 지역, 특히 구도심에는 상가 교회들이 정말 많습니다. 어렵게 목회하는 분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작은 교회를 돕는 일에 연합회 역량을 최대한 모았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교회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지 않을 때였다. 교회에 대한 여론 악화로 관공서조차 선뜻 방역지원에 나서지 못했다. 홍 목사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언론들이 교회 이름부터 사진까지 죄다 기사로 내보내버렸잖아요. 성남시기독교연합회 소속 교회들은 관내에서 다수 확진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기도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성남시의회 의장을 직접 만나 방안을 모색했고, 성남시청 협력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홍 목사는 재임기간 작은 교회를 위한 수억의 예산을 확보하고, 임기 중 약 1천여 교회를 도울 수 있었다. 성남시기독교연합회 저력을 폭발시켰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대표회장 자리를 이임한 홍완표 목사. 그는 ‘위드 코로나’ 목회를 계획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선 할 사역으로 ‘전도’로 꼽았다. 

“코로나 3년 동안 대면모임이 사실상 금지됐습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온라인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입니다. 방역정책도 크게 전환된 만큼 다시 열심히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성도들도 영상예배를 보면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장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신앙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대원교회 1층은 카페 ‘글로리어스’다. 교회를 처음 지으면서 교회가 만남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마련했다. 교인들 뿐 아니라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주민들은 부담없이 이곳을 찾았다. 코로나를 넘어 더 많은 이웃들이 교회 카페를 찾아와 맛있는 수제 대추차를 맛보고, 더 달콤한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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