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신 신학’의 핵심은 인간 아닌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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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신 신학’의 핵심은 인간 아닌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2.02.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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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사 46:1)

하나님께서 당신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당신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거듭 말씀하시는 것은 다른 신과 비교당하는 것이 자존심 상해서가 아닙니다. 대제국 바벨론의 신 벨과 느보의 몰락을 선언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더 높아지시는 것도 당연히 아닙니다.

이사야를 통해 거듭거듭 선포되는 ‘유일신 신학’은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메시지였습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 찌들었던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해 여호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로 만들어주신 것은, 인간 권력에 지배받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유민으로 살아가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령관이 되어주실 것이기에 그들은 안심하고 하나님만 따르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하나님의 약속 대신 세상의 힘을 계속 탐냈습니다. 최고의 영적인 지도자 사무엘을 모시고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졸랐습니다(삼상 8:5). 그들은 전사였던 사울과 다윗에게 갈채를 보냈고, 이스라엘이 영토를 넓히고 부를 쌓아가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솔로몬 시대는 그러한 ‘제국의 길’의 정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세운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의 이름을 내고 이스라엘의 국가적 위상을 과시하는 상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체험 대신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과 그곳에서 드려지는 장엄한 예식에 도취되는 감각적 경험을 추구했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칭찬을 기준 삼아 외형만 번듯한 종교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탄압했던 제국들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참된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과 나만의 영적인 사귐에 있습니다. 삼천년 전 이스라엘에서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나 동일한 진리입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내 신앙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내가 참여하는 예배의 웅장함이 곧 내 신앙의 선명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제국들은 백성들을 결집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종교를 운영하고 압도적인 예식을 통해 세를 과시하곤 했습니다. 애굽의 주술사들은 뱀을 비롯한 동물들을 부리는 마술을 구사했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의 신관들은 점괘를 읽는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페르샤와 헬라의 사제들은 신탁을 통해 세상의 미래를 점치고 권력자들을 움직였습니다. 이것은 제국들의 길이지 이스라엘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쉼 없이 왕들과 권력자들, 백성들을 행해 제국들의 길을 걷지 말라고 경고하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제국의 화려함과 권세 앞에 주눅들어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훈육하고 책망하시던 하나님께서 참지 못하시고 바벨론을 향해 직접 손을 드십니다. 그들의 교만과 악행이 도를 넘었고, 무엇보다 이스라엘을 벌주는 심부름을 시켰더니 신났다고 이스라엘을 가해한 데 대한 심판입니다(사 47:6~7).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종에 불과한데도 스스로 여주인 여왕이 되어 하나님을 멸시했으니 그 죄가 크다는 말씀입니다.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8~9)”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제국을 세우기도 하시고 무너뜨리기도 하시는 분,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서 만국의 주재요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고 있는지요?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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