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보청기를 끼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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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보청기를 끼우라
  • 김학중 목사
  • 승인 2022.02.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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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목사/꿈의교회 담임

오늘도 뉴스를 틀어본다. 올림픽 뉴스로 한껏 마음을 고조시키려고는 하는데, 실상 복잡한 소식들만 들려온다. 대선 정국에 정당들은 서로 이미지 메이킹에 힘쓰며 서로를 깎아 내리고 있고, 소상공인은 소상공인대로, 학부형과 학생은 그들 나름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자기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누가 옳은지에 대한 판단 이전에, 서로 날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 오래되다 보니 보는 것만 해도 지친다. 어릴 때부터 분명히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들었는데, 왜 배운 대로 살지 못할까?

그 힌트는 의외로 일상적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명절을 맞이하여, 가족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었다. 여러 대화를 나눈 뒤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필자의 아내가 갑자기 대화의 내용을 확인하며 묻는다. 그때 필자는 난감했다. 사실 아내가 묻는 대화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작 내가 기억하는 대화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시간에 같이 있었는데, 왜 서로 기억하는 것이 다를까? 생각해보니 그렇게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은 먼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의 이야기였다. 사람의 집중력은, 그 사람의 관심사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 백사장에 파묻힌 동전을 찾을 때, 금속탐지기를 사용한다. 금속탐지기는 모래가 아무리 많아도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금속이라면 모래에 파묻혀 있어도 탐지해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관심을 두는 분야의 이야기는,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 속에서도 귀에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내가 침묵하고 들었던 이야기’였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이 말도 하고 싶고, 저 이야기도 하고 싶다. 그런데 이것이 함정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그것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게 된다. 대화 중에 때때로 “넌 왜 아까 지나간 이야기를 하냐?”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자기가 할 말만 생각하다가, 이미 대화가 다른 주제로 넘어간 것도 모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 것을 볼 때, ‘내가 침묵할 때 들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많은 말을 쏟아 내거나, 무슨 말을 할까 궁리하다 보면 상대방의 이야기는 기억하기가 어렵다.

결국 누군가의 말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상대방의 말에 관심이 없거나, 내 안에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각 계층은 계층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교인들은 교인들대로, 서로 다른 말을 하며 싸우는 이유도 결국 이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라면 무엇이 필요할까? 간단히 말해서 우리 마음에 두 가지 ‘보청기’가 필요하다.

먼저 한 쪽 귀에는 “이해”이라는 보청기를 껴야 한다. 공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이해라는 보청기를 끼우면, 나와 가치관이 맞지 않더라도 부적절한 싸움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대화가 가능해지며, 서로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문제의 시작은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만 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웃 간의 정도 결국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보수와 진보 사이에,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 사이에, 가족과 이웃 사이에 다시 이해의 보청기를 끼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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