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란트 받은 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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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란트 받은 자처럼
  • 박재신 목사
  • 승인 2022.02.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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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신 목사/은혜광성교회

세상을 살 때 사람들은 하나라도 더 얻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경차를 소유하면 소형차, 소형자를 소유하면 중형차, 중형차를 소유하면 대형차로 점점 더 큰 차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룸에서 투룸으로, 25평 아파트를 소유하면 32평 국민평형 아파트를 원하고, 32평 아파트를 소유하면 더 넓은 대형평수 아파트를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영적인 삶도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를 보면서도 한 달란트 받은 자보다 두 달란트 받은 자가 좋겠다 생각하고, 두 달란트 받은 자보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더 복 받은 자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영적인 삶도 이 세상의 삶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우리를 주님의 안식으로 초청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적인 관점에 사로잡혀 주님 안의 삶도 안식이 아니라 경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적인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영적 삶을 살아가야 할 줄 압니다.

경쟁이 치열한 삶이 아니라, 이 경쟁 사회에서 지치고 지친 우리들을 안식의 삶으로 초청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달란트 비유를 다시금 생각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복된 것은 사실이지만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남기려면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해야 하겠습니까? 하지만 두 달란트를 받은 자가 두 달란트를 남기는 것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 비해서는 쉬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남긴 자에 대한 주인의 칭찬과 두 달란트 남긴 자의 주인의 칭찬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하나님은 양의 많음으로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라 적은 일이라도 충성하는 그 충성심을 보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을 맡긴 주인의 칭찬이 양의 많음이 아니라 그 맡긴 일에 대한 충성심을 보시고 칭찬을 똑같이 해주시기에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를 부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시쳇말이 있듯이 남을 부러워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그 마음에는 시기심이 생기게 되고 이런 시기심이 생기게 되면 결국은 파국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주인의 칭찬이 동일함을 알아 두 달란트 받은 자처럼 두 달란트만 남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게 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주인을 오해하여 땅에 묻어두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땅에 묻어두면 주인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땅에 묻어두기를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묻어 둔 것을 캐내어 사용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희망의 2022년을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을 위해 헌신을 다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헌신을 할 때 다섯 달란트 받은 자나 두 달란트 받은 자나 주인의 칭찬은 동일함을 알아 남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땅에 묻어두지도 않았던 두 달란트 받은 자의 자세를 가지고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경쟁하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주님께 충성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함께 하늘 기쁨도 만끽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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