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그래도 감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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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그래도 감사해야
  • 김기창 장로
  • 승인 2022.01.2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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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김기창 장로 / 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
김기창 장로 / 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
김기창 장로 / 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

30년 전, 정말 있어서는 안 될 큰일을 겪었다. 흰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서재에서 자정이 넘도록 공부를 하고 건넌방에서 우리 네 식구가 잠을 자고 있었다. 깊은 잠이 들기 전에 “불이야!”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눈을 떠보니, 이게 웬 일인가. 화마(火魔)가 마루를 지나 우리가 자는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순간 두 아이가 걱정되어 깨워 밖으로 내 보냈다. 그 사이에 동네 사람이 119에 바로 연락하여 소방차가 도착했으나 골목길의 무질서한 주차로 화재 현장까지 접근을 못했다. 아쉬운 대로 동네 사람들이 양동이에 물을 담아 릴레이식으로 전달하여 진화 작업에 나섰지만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때의 불안과 초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사이에 소방차가 들어와 다행히 불을 껐다.

당시 정신이상자인 방화범이 이곳저곳 다니며 불을 놓는 사건이 있었는데 우리 집이 첫 번째 피해자가 된 것이다. 그 화재로 평생 모았던 전공 서적 1,500여 권과 박사논문 작성 자료는 물론, 논문 작성을 위해 빌려 온 워드 프로세서를 태웠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우리 네 식구는 손끝 하나 다친 데가 없었다. 나는 절망감에 사로 잡혀 어찌할 바를 몰랐고 기도는커녕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다. 그래도 네 식구가 무사한 것을 생각하며 방구석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는데 기도는 나오지 않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이러한 경우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며칠 뒤 주위의 어떤 분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을 찾게 되었다. 서재에 그 많은 책이 없었다면 그 불은 거실로 나와 우리가 자고 있던 건넌방까지 순식간에 번져 우리 식구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라고. 깊이 잠든 새벽에 우리 가족들의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고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불이 그 많은 책을 태우고 있었기에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다. 결국 책이 우리 식구들의 목숨을 건져 주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잠깐이나마 하나님을 원망하고 학문을 포기하려고 약하게 마음먹었던 일을 반성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더 열심히 공부하겠노라고 결심했다.

그 후, 고맙게도 직장 동료 한 사람이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과 출판사를 대상으로 ‘김 선생 책 돕기 운동’을 주선해 주었다. 덕분에 잠깐 사이에 상당한 양의 전공 서적을 확보하게 되었다. 또, 주말마다 청계천 고서점에 들러 필요한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낮에는 직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최선을 다해 박사 논문 준비를 했다. 그 결과 원래 계획대로 1년 반 만에 영광의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예레미아서를 보면(렘 17:7~8),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화창한 봄날에만 살도록 배려해주겠다는 장밋빛 약속을 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우리가 건조한 계절을 대비할 수 있는 믿음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여름이 지나면 혹독한 겨울이 뒤따라 올 것이다. 하지만 믿음의 뿌리가 땅 속 깊이 내려 생수의 근원에 닿아 있으면 가뭄이 계속되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고 풍년이 들면 더욱 번성할 것이다.

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


※ 소개의 글 
새롭게 연재되는 <신앙 에세이>는 장로님들이 보내주신 자유로운 형식의 산문으로 채워집니다. 장로님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보따리는 목회자들의 설교예화로, 또한 성도들의 신앙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를 선사할 것입니다. <신앙 에세이>에는 전 백석대 김기창 교수, 서경대 이복규 명예교수, 전 진관고 임문혁 교장, 한국교원대 최운식 명예교수 등 문학과 국어교육학을 전공한 문인 장로님들이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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