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도 액션 플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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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에도 액션 플랜이 필요하다
  • 이의용 장로
  • 승인 2022.01.2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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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 ①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음악이 있다. 고전음악, 대중음악, 종교음악 등. 이 음악들의 공통적인 주제는 ‘만남’이 아닐까 싶다. 대중음악의 가사에는 이성 간의 만남과 이별, 사랑이 애틋하게 그려져 있다. 찬송가나 복음성가의 가사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구구절절이 그려져 있다. 그러니 “인생은 만남이다”라고 정의해도 좋을 듯하다.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길’을 찾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다. 니고데모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와 그걸 물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커다란 그림을 제시해주신다. 수직, 수평 축이 교차하는 십자가의 모형이다. 

나는 평소 이런 의문을 갖곤 한다. “왜 우리나라의 개혁교회에는 기도원만 많고 수도원은 없을까?” 혹시 도(道)보다 복(福)에 더 관심이 많아서가 아닐까? 예수님을 내 인생의 그리스도로 모시는 것을 ‘신앙’이라고 한다면, 그 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 못지않게 결혼생활이 중요하듯, 신앙 못지않게 신앙생활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신앙에 비해 취약하다. 신앙생활에 비해 신앙만을, 이웃 사랑에 비해 하나님 사랑만을, 가정과 사회생활에 비해 교회생활만을, 삶보다 사역만을 강조하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실제 삶에서 신자나 비신자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오늘 우리의 민낯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믿습니까?”만 외치지 신앙생활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Action plan)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마주하게 될 다양한 삶의 순간에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향과 실천지침이 없는 것이다. 

열매를 봐야 나무를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무엇일까? 우리가 어떤 열매를 맺어야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하나님과 이웃들이 인정할까? 니고데모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구도자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찾아가 여쭈었고, 마침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라는 최고의 답을 얻어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던 율법사도 뜻밖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신앙생활의 대강령을 얻어냈다(마 22:36~40). 우리도 목회자가 시키는 대로 하기에 앞서, 내가 주어(主語)가 되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주님께 여쭤야 한다. 그리고 이미 주신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그 해답을 스스로 찾아나서야 한다. 목회자들도 성도 스스로 주님을 만나 길(道)을 찾는 구도자가 되도록 지도해야 한다. 나아가 기복적인 기도원도 구도적인 수도원으로 바꿔나갔으면 좋겠다. 

되돌아보면 필자도 ‘일하는 교인’이었지 ‘도를 찾는 구도자’가 되지 못해 늘 안타깝고 답답했다. 감나무 아래에 입 벌리고 누워 감이 내 입안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대하는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해온 적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때때로 구도자가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 문제의식을 갖고 고민을 할 수 있었음은 하나님의 은혜다. 덕분에 나름대로 신앙생활의 길을 찾았고, 이웃들과 나눌 수 있는 액션 플랜도 마련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내가 찾은 신앙생활의 키워드는 바로 ‘감사’다.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감사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의 액션 플랜을 독자들과 나누려 한다.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필자 이의용 장로는 대기업 임원과 대학 교수를 거쳐 지금은 교회문화, 소통, 교수법,  감사 등 시대적 과제를 연구하며 그 결실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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