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을 위한 교회, 사회를 위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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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을 위한 교회, 사회를 위한 교회
  • 김종생 목사
  • 승인 2022.01.1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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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생 목사/한국교회봉사단 상임이사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에서 소는 사자에게 맛있는 ‘풀’을, 사자는 소에게 맛있는 ‘고기’를 정성껏 제공해 주었다. 그렇지만 둘은 결국 헤어졌다. 상대를 잘 몰랐고 상대에게 맞추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면 남도 좋아할 것이라는 다소 일방적인 사랑은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선의로 시작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슬픔으로 귀결되었다. 입장이 같지 않을 때 나타나는 이 안타까움을 웃픈(?) 이야기로만 치부해 버릴 수 없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리 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의 피로감은 높아져 있다. 피곤하지 않고 여유가 있으면 웃으며 넘어갈 일도 정색하고 심하게 경계한다. 교회와 사회, 진보와 보수, 남한과 북한,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서로 다른 둘 사이에서 같은 것을 찾아내는가, 아니면 서로 다른 것을 찾아내는가? 많은 결점과 흠결을 본성처럼 가지고 살아가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인간은 온전하지 못하다. 따라서 우리에게서는 같은 것을 찾고자 하면 같은 것이 나오고 다른 것을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다른 것이 나오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찾고 싶은가를 거꾸로 물어보자.

최근의 여러 조사에서 한국의 기독교, 교회에 대한 국민의 비호감이 다른 종교보다 높다고 발표됐다. 더 놀라운 것은 다른 종교와의 비교 이전에 우리 교회에 대한 교인 자신의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 스스로 자신이 없다는 것이고, 교회에 대한 긍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목사께서 쓰신 칼럼에 발상의 전환을 하자면서 “교회를 위한 교인에서 교인을 위한 교회로 전환하자”라고 하는 데 많이 공감되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교회를 위해서 교인들의 헌신과 충성을 요구해 왔다. 나와 같은 목회자라면 더욱 교회 중심의 신앙과 교회 우선의 헌신을 강조해 온 것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회를 우선순위에 놓고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 해 온 것인데 어떻게 비호감의 산실이 된 것일까? 그토록 중요한 주님의 교회로 믿고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충성한 교인들의 노고는 온데간데 없고 비호감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향한 충성 못지않게 우리 교회가 교인들을 위한 교회였던가를 되물어야 할 지점에 와 있다. 자칫 그때의 교회가 목회자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가정과 사회보다는 교회라는 공간 속에 교인들을 묶어두는 결과로 발전하지 않았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하겠다.

기본적으로 교회는 선교적 공동체다. 또한 교회는 이타적 공동체이다. 교회는 상대에게 나를 맞추며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사명이 있다. 하늘의 선민이라는 유대인들의 폐쇄성은 성육신하신 주님의 표현방식을 안타깝게도 수용할 수 없었다. 민족 복음화의 열정으로 가득한 한국교회가 한국 땅, 그것도 코로나로 피로감 짙은 우리 국민을 관용해내지 못한다면 21세기 유대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교회의 문법과 우리 사회 정서 사이의 틈이 너무 크다. 우리는 전도를 말하고 영혼 구원을 소리 높여 말하지만 지치고 힘든 국민의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의 고충과 신음을 경청하며 공감하기 위해 땅으로 내려오신 주님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같음을 찾으며, 교회를 위한 교인에서 교인을 위한 교회로, 사회를 섬기는 교회로 거듭나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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