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우상숭배’ 관점의 우려도
상태바
군복무, ‘우상숭배’ 관점의 우려도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1.12.28 0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초기 기독교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해(6)

초기 교부 중 군복무와 전쟁, 그리고 평화문제에 대해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지시한 이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c. 160-c. 225)였다. 그는 대표적인 라틴 교부로서 197년경부터 224년까지 약 20여년에 걸쳐 집필활동을 했다. 그리스어로도 글을 썼으나 현재는 라틴어로 쓴 31편의 글이 남아 있다. 이중 기독교인의 군 복무와 전쟁에 대해 부분적으로라도 언급하고 있는 책으로는 『변증서 Apologeticum』, 『영혼의 증거에 대하여 De testimonio animae』, 『스카폴라에게 Ad Scapulam』, 『유대인 반박론 Adversus Iudaeos』, 『마르키온 반박서 Adversus Marcionem libriv』, 『육체의 부활 De resurrectione carnis』, 『우상숭배론 De Idololatria』, 『화관론 De corona militis』, 『외투에 관하여 De pallio』, 『박해 시의 도주에 대하여 De fuga in persecutione』, 『인내론 De patientia』 등 열한 권에 달한다.

그런데, 그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변증서』에서는 기독교인들의 군복무를 반대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이교도들을 대상으로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으므로, 기독교의 비폭력적 특성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기독교인들이 국가적 의무에 소홀하다는 비판에 유의하여 말하고 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 저술에서 기독교인들은 용감한 군대, 성실한 원로원, 세계의 평화, 그리고 제국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은 제국에 충성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 복무를 포함한 제국민의 의무를 진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들이 살고 있는 모든 곳, 곧 도시와 섬들, 성과 마을들, 시장과 군부대에도 참여하고 있다”라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신전을 제외한 제국의 어디서든 공중생활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또 기독교인들은 황제를 위해 기도하고, 제국을 수호하는 군대의 승리를 기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테르툴리아누스는 초기에는 기독교인들의 군 복무를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남을 죽이기보다는 기꺼이 자신이 죽고자 하는 이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후기에 기록한 『화관론』과 『우상숭배론』에서는 이전과는 상반된 입장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군인이 월계수로 장식한 화관(花冠)을 쓰는 일에 대한 비판인 『화관론』에서 이 점을 심각하게 취급하고 있다. 『화관론』은 초기 교부들의 문헌 중 군복무 문제만을 취급한 유일한 문헌인데, 황제가 즉위하면서 병사들에게 하사한 선물을 받을 때 월계관 쓰기를 거절한 기독교인 병사의 순교를 보고 저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 제1부(1.6-7.2)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군대의 월계관을 쓰는 것이 왜 우상숭배인가를 논증하였고, 제2부(7.3-11)에서는 월계관이 이교 의식과 관련되어 있음을 논증하였다. 그리고는 군복무를 복음의 이름으로 정죄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우상숭배론』에서도 나타나 있는데, 이 기록을 보면 기독교인들이 군에서 복무하고 있거나 징집 이후 기독교로 개종한 군 복무자들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월계관을 쓰는 것을 이교적인 습관이라는 점에서 우상숭배로 보았고, 그래서 이를 거절한 군인에 대한 기록을 남겨 주고 있다. 테르툴리아누스가 군 복무를 반대한 것은 화관과 함께 군 복무가 우상숭배와 관련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군에서의 종교적 관행을 잘 알고 있었고, 태양신 숭배, 서약(誓約, sacramentum), 군기(軍旗)에 대한 숭상을 문제시했다. 군에서의 서약이란 황제의 명령에 따르고 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서약하는 것인데, 이 서약은 군 입대 시, 매년 정월 초하루, 그리고 황제의 취임기념일에 시행되었다. 군기는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어 병영 막사의 성소(adiculum)에 정중히 보관되었다고 한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