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 ‘자유’, 반드시 후손에게 물려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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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 ‘자유’, 반드시 후손에게 물려줘야”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1.12.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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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대담 // 남서울은혜교회 원로 홍정길 목사(밀알복지재단 이사장)

현대사의 격동기를 모두 경험한 팔순의 원로가 나라와 교회를 향한 걱정을 드러냈다. 남서울은혜교회 원로이자 CCC와 코스타 등 청년학생운동을 이끌고, 90년대 ‘남북나눔운동’을 통하여 인도적 대북지원과 평화통일의 기반을 닦아온 홍정길 목사. 최근 설교집 『하나님의 이름은 자유입니다』와 대담집 『나라와 교회를 생각한다』를 잇달아 펴내며 한국사회와 교회를 향해 복음의 목소리를 높인 홍 목사는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일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나라와 교회를 향한 원로의 시선, 그리고 깊은 고민 끝에 내놓는 ‘희망의 메시지’는 초갈등·양극화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다. 2021년을 마무리하면서 일평생 복음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온 홍정길 목사에게 어른의 지혜를 구해보았다. <편집자 주>

자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바탕
전체주의 국가 된다면 빠져나오기까지 굉장한 희생 필요할 것

홍정길 목사는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에게 ‘예수 잘 믿는 것’을 목표로 삼자고 권면했다.
홍정길 목사는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에게 ‘예수 잘 믿는 것’을 목표로 삼자고 권면했다.

사회 갈등이 극심하고 불신과 비방이 가득한 혼돈의 2021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목사님께서는 누구보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셨을 것 같습니다. 

- 한 번은 이렇게 마주쳐서 심각하고 치열하게 사회 문제 앞에 우리 민족이 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념의 갈등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우리나라는 왕조 시대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신분제도의 변화를 맞이합니다. 광복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둘 중에 하나의 정치체제를 선택해야 했는데 남쪽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이죠. 1948년 4월 11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습니다. 그런데 광복 이후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민주체제를 선택하고 나라가 세워질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 덕분에 5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배 안 곯고,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소중한 자유를 잘 지켜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무신론적 사회주의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가 가진 문제는 오직 목표에 서서 실제를 다시 재단하고 리셋을 하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역사 왜곡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고요, 왜곡된 역사를 학습하고 자란 세대들이 전통을 기반으로 살아온 세대와 충돌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은 안타깝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말 무서운 혼란이 올 것이고, 이 갈등을 넘어서면 이제까지 가보지 못한 새로운 민족의 역사를 펼칠 수 있는 자신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말씀을 관통하는 중요한 단어가 바로 ‘자유’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많은 가치 중에서 유독 자유를 강조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 자유야말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귀한 선물을 빼앗기지 않고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 책임입니다. 자유에는 창의성이 있고 책임감이 있고 자발성이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 서독과 동독, 대만과 중국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바로 자유의 있고 없음의 차이겠지요. 자유를 강조한 종교는 오직 기독교뿐입니다.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체제에서도 자유의 중요함을 강조한 문화나 국가는 없었습니다. 동양의 사서삼경에 자유라는 말이 없고요, 이슬람이나 힌두교, 불교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입니다. 성경의 자유에는 세 가지 뜻이 있어요. 첫째는 죄악의 속박에서 풀어 주신 자유, 둘째, 용납이라는 뜻을 가진 사랑의 자유, 그리고 셋째, 무엇이든지 하라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자유에 한 가지를 더 말씀하셨어요. 인간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시면서도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던 거죠. 이 명령의 의미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기차가 철길 위를 달릴 때 속도가 나듯이 자유는 궤도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궤도에서 이탈하면 그것은 방종이죠. 하나님의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이고,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의존적 자유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영적 자유함을 입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 아닙니다. 과거에는 저도 영적 자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치적인 자유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국민에게 자유를 박탈한 나라를 한 번 보세요. 개혁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쉽게 숙청하고 죽입니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서 약 1천5백만 명이 죽었고요, 중국은 문화대혁명 때까지 2천만 명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학살은 마지막 빅브라더 국가가 될 때까지 끝나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빅 브라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두렵습니다. 자유는 소중합니다. 정치적으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개개인이 인간답게 살고 마음껏 잠재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바탕입니다. 

목사님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 사회주의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우려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언제부터 한국 안에 사회주의 운동이 시작됐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나의 경험으로는 CCC 안에서 사회주의운동이 시작된 것을 목격했습니다. 당시 기독청년 중심으로 사회주의 연구모임을 만들어서 남쪽에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고, 평생을 사회주의 사상에 바친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라면 국가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가슴에 품고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 정권이 들어선 후 너도나도 개혁을 외쳤지만 그 실상은 개혁이 아니라 체제의 변혁이었습니다. 현 정부가 헌법 전문에 ‘자유’라는 말을 없애고 ‘평등’으로 대체하려는 행동은 꽤 위험한 것입니다. 진보 정치인들은 보수를 비판하며 개혁을 외쳤지만 정작 자신들을 개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회를 개혁하려면, 먼저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삶부터 스스로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진보의 문제도 있지만 보수의 책임도 크지 않습니까?

- 보수 우파도 문제지요. 이들은 입신양명이 목표에요. 국가나 민족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죠. 나에게 이익이 없으면 헌신하지 않습니다. 보수 정치인들은 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창피하게 무너졌는지를 통찰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과오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오로지 경제 발전의 열매에만 급급한 과거를 회개해야 합니다. 저는 성경의 가르침과 기준을 정치 이념 위에 두는 목회자입니다. 성경의 기준을 따라 좌우 어디든 지지할 것은 지지하고, 비난할 것을 비난하고자 합니다.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 발전시키고 고상한 정신문화를 함양하여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나라를 물려주라는 것입니다. 자유를 빼앗기고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면, 다시 빠져나오기까지는 굉장한 희생을 요구받게 될 것입니다. 

홍정길 목사
홍정길 목사는 역사의 반복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한 한국교회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답했다.

목사님 말씀을 듣다보면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우리 사회 갈등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에 망할 위기가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 못할 방법으로 역전시켜주셨습니다. 6.25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는 망했어야 했어요. 전쟁 후에 이렇게 일어나는 나라는 없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절반 이상이 공산화가 됐는데 한쪽 구석에 붙어있는 작은 나라가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6.25 전쟁 중에 유엔의 파병을 일으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기적같은 일입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독재도 끝나고 IMF도 이겨냈습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가망이 없을 것 같은 역사의 반복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국교회가 보수 우파에 많이 기울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대한민국을 보면 교회가 공공의 선을 향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반성할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요?

- 교회가 시대정신을 따라가서 그래요. 로마서 12장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대정신은 ‘이 세대’를 따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리스도인들이 그걸 따르지 않은 거죠. 교회가 세상의 칭찬만 따라가는 것에 저는 반대합니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세상에서 영접받은 때는 없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래요. 늘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비난을 퍼부었지요. 예수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비난이 어떤 것이냐에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너희는 구원까지 받아놓고 이 세상에서 왜 우리와 똑같이 사느냐”고 비난한다면 그것은 우리 책임이죠.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을 찾으시는 분입니다. 신앙에는 그에 따른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교회의 큰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가를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그 말씀은 ‘믿음은 실제’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 맞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학습은 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사는 삶이 없었던 거죠. 가령 컵이 하나 있습니다. 실제 컵은 없이 “컵”이라고 말만 하면 소리에 불과하죠. 우리는 성경공부를 통해 배웠던 개념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체화된 순종으로 나타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믿음의 고백은 실제가 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10절에는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받은 자”라고 뒤 이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위해 부르셨다는 것인데 지금 개신교 안에서는 구원의 선물만 있고, 그리스도인의 선한 일은 강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은 삶으로, 실천으로, 선행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의 순종이 열매를 맺어 밖으로 자꾸 퍼져나가야 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목사님께서는 1992년 한중수교가 체결된 직후 곧바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쳐오셨는데요. 남북통일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역사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룬 사례는 다윗이 이끈 통일과 독일의 통일 밖에 없습니다. 그 이외에는 전부 무력 통일입니다. 독일이 갈라졌지만 교회는 “우리는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동독교회와 목회자들을 지원하는 노력을 서독교회가 감당했지요. 하나님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기도하고 동독의 문을 계속 두드렸죠. 서로를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기도회를 하던 것이 결국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지 않았습니까? 독일의 통일에 교회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는 통일은 민간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설령 북한이 무너진다고 해도 남한의 군대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UN이 군대를 파견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북에 공식적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다만 북한 주민들이 투표로 통일을 결정하겠죠. 저는 그때 북한이 우리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통일을 위해 남한 교회가 북한에 깃발을 꽂는 그런 것을 하면 안 됩니다. 그저 사랑만 주면 됩니다. 우리가 꾸준한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통일을 주신 것처럼, 독일 통일의 문을 열어주신 것처럼 그렇게 통일이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남북나눔운동을 통해 인도적 지원을 오랫동안 해오셨어요. 하지만 교회가 지원한다는 표시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지원해도 교회가 했다는 것을 모를텐데요. 그래도 교회의 꾸준한 지원과 사랑이 통일을 이끌 수 있을까요?

- 교회가 대북 인도적 지원에 힘쓰는 것을 북한이 모를 거라는 이야기 저도 굉장히 많이 들었습니다. 서독교회가 동독교회를 엄청나게 지원했는데 교회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저도 궁금해서 독일 통일 20주년 때 독일교회 목회자들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통일이 우리의 보상입니다. 그보다 더 뭘 바랍니까?” 그 말을 듣고 저는 울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통일’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홍정길 목사
홍정길 목사는 암울한 시대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희망이라고 밝혔다.

목사님께서는 청년학생운동에도 힘을 쏟으셨습니다. 요즘 청년들 희망이 없다고 말하곤 하는데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제가 대학을 졸업했던 시절도 암울했습니다. 직장도 없었고, 매일 아침 신문에는 굶어죽는 소식이 실렸어요. 그때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인줄 알고 그 환경과 소유와 여건에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때 나의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도 젊은이들의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복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전도가 사라지고 선교가 약화되고 있어요. 목회자들은 엔터테이너로 바뀌고 있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라는 사실입니다. 영원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올해 목표도 예수 잘 믿읍시다! 예수 잘 믿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시작이고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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