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섬김, 그 모든 것의 바탕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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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섬김, 그 모든 것의 바탕은 사랑입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1.12.0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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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교를 향해 뛴다 - 덴마크 오대환 선교사

덴마크는 아무래도 낯설다. 기껏해야 목축업이 유명한 북유럽의 기독교 국가라고만 막연하게 떠올릴 뿐이다. 얼핏 선교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서 30년간 복음을 전한 이가 있다. 19911월 덴마크로 떠나 올해 630년 사역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오대환 선교사다.

 

부르심 받고 떠난 덴마크

신학교에 다닐 때부터 선교 열정이 남달랐던 그였다. 아직 체계적인 선교 교육 시스템이 부족할 당시 동기들과 선교학 박사들을 강사로 초청해 선교 세미나를 열었다. WEM이라는 선교 조직을 만들고 선교 희망자 50명을 모집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열정과 신앙만 가지고 선교지로 떠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준비가 많이 필요한 일임에도 믿음 하나로 나섰죠. 선교사 지망생들이 선교학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습니다. 선교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앞서서 축적해간다면 제가 속한 백석총회가 한국 선교를 이끌어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차근차근 선교에 대한 공부를 쌓아가고 있던 그에게도 부르심이 찾아왔다. 덴마크에서 선교사가 한 명을 파송해달라고 총회에 요청이 온 것. 하지만 아직까지는 총회에 선교 훈련을 제대로 받은 이들이 없을 때였다. 오대환 선교사 역시 선교 훈련을 다 마치지 않은 터라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았지만 결정을 미룰 수 없었다.

몸으로 때우기로 했습니다. 공부만 다 마치고 1월에 바로 덴마크로 떠났어요. 졸업식도 하지 않고 가서 3월에 잠깐 한국에 들어와 졸업식에 참석하고 떠났을 정도로 긴박하게 출발했죠. 총회에서 저를 위해 목사고시와 강도사고시를 묶어서 치르고 덴마크로 떠나기 전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어요.”

 

교민과 입양자 사역에 집중

덴마크의 현재 인구는 580만 명,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 인구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 작은 나라다. 교민도 6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오대환 선교사가 덴마크로 떠났던 1991년에는 도움을 받을 만한 교민도 20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매사에 헤매고 부딪히며 배워가야 했죠. 대단치 않은 일을 하는데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했어요. 그래도 이곳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차근차근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덴마크는 루터교회가 국교로 지정돼있고 기독교 인구가 80%에 육박한다. 때문에 자연히 오 선교사의 사역은 교민들에게 집중됐다. 당시 덴마크에는 한국인 교민들을 위한 교회가 단 한 곳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개척한 교회는 크리스천 교민들을 위한 위로의 장소이자 믿지 않는 교민들을 위한 복음전파의 교두보인 동시에 한국 교민 전체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한인 커뮤니티 역할도 감당했다.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로 손꼽히는 만큼 이주 기준도 까다롭다. 그래서 덴마크에 머무는 한국인들도 고학력자가 많다. 오대환 선교사와 교회 성도들은 수는 많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하나 된 단단한 공동체를 이뤘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결석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신실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교회가 자리를 잡자 오 선교사의 시선은 관심이 필요한 또 다른 이들에게로 옮겨 갔다. 그들은 바로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덴마크 부모를 만나게 된 입양자들이었다. “입양자들은 한국정부와 교회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입양을 와야 했던 이유와 한국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살고 있어요. 그들의 질문에 우리가 답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선교 이끌길

오대환 선교사의 사역은 한국센터의 설립으로 방점을 찍었다. 물론 교회도 있고 대사관도 있고 코트라(KOTRA)도 있었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선교와는 다른 공간이 필요했다. 오로지 섬김을 위해 세워진 복합 문화 공간이었다.

한국센터는 오대환 선교사의 선교 철학이 담긴 곳이다. 교회 성도들이나 교회로 오고자 하는 이들 뿐 아니라 모든 교민과 입양자, 덴마크를 거쳐 가는 여행자들의 필요를 돕고 채워줬다. 북유럽 낯선 나라에서 만나는 한국센터라는 이름은 지나는 이들에게 큰 선물이 됐다.

일부러 선교라는 말을 붙이지 않고 한국센터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교회의 역할은 예수를 믿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을 섬기고 어려운 이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교회와 크리스천이 할 일이자 선교의 시작이고 복음전파의 기초라고 봅니다. 사랑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우리의 선교가 헛되다고 생각해요.”

앞만 보고 달려왔던 덴마크 선교 레이스에도 끝은 왔다. 당뇨와 고혈압 등 지병으로 인해 30년 정을 붙인 덴마크를 떠나와야만 했다. 아직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교회를 위해 더 악화되기 전에 사역을 내려놨다. 오 선교사는 지난 30년을 회고하며 진지하고 정직하고 순수한 선교를 하려고 애썼다며 미소 지었다.

이제 원로 선교사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오 선교사는 한국교회가 세계선교를 이끌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미국과 유럽 교회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지나친 보수화로 길을 잃었어요. 한국교회도 신앙적 보수와 정치적 보수를 혼동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국교회가 지도력을 잃으면 희망이 없어요. 한국교회가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깨어났으면 합니다. 세계선교를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이 분명 한국교회와 교단에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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