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나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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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설교] 나의 이웃
  • 이주형 목사
  • 승인 2021.12.0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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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목사/한성교회 담임

| 누가복음 10:29~37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찾아와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율법 전문가는 영생을 어떻게 얻는지에 대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은 질문자에게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를 되묻습니다. 그는 전문가답게 신 6:5, 레 19:18 내용으로 멋지게 답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답이 옳다고 하면서 당신도 그대로 행하라고 하며 그러면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옳게 보이고 싶은 율법 교사는 “내 이웃이 누굽니까?”라며 자신의 이웃에 대한 정의를 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강도 당한 이를 만난 세 종류의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마친 후에 강도 당한 사람에게는 이웃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율법 교사는 주저 없이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당신도 이같이 하라고 말합니다. 둘의 대화는 이렇게 마칩니다.

율법 교사는 영생의 문제로 예수님께 접근했지만, 자신의 이웃이 누군지를 알고 싶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윗집’, ‘옆집’,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웃이라고 합니다. 자주 보는 사람, 안면 있는 사람을 ‘이웃’이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강도 당한 이를 만난 네 사람은 이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입니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디 살고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강도당한 사람에게는 누가 이웃이냐고 했고, 율법 교사는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생면부지로 전혀 모르지만 사이지만 이웃이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강도 당한 사람에게는 이웃이 못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당한 사람에게 이웃이 되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 동일한 조건이었지만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웃이 안 되었고, 사마리아 사람은 이웃이 되었습니다.

자비를 통해 관계할 수 있는 서로가 이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수많은 이들이 우리의 이웃이 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에게 이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의 이웃이셨습니다. 이웃의 모범이셨습니다. 초면이라도, 거리에 상관없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자비를 베풀어 주셨고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이에게 이웃이셨습니다. 이웃이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여서 이웃이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웃이 되거나 이웃이 되어 주면서 살아갑니다. 도우면 이웃이 됩니다. 돕지 않으면 이웃이 안 됩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우리도 어느 사이엔가 “내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고” 있는 이웃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라고 말하지 않아도 많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입니다.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런 이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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