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협 이홍정 총무 사과 이면의 ‘선택적 에큐메니칼’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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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협 이홍정 총무 사과 이면의 ‘선택적 에큐메니칼’ 유감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1.11.0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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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참석 두고 진영 내 극심한 반발
지난 4일 결국 사과문 발표…논리적 자가당착·분열 나타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홍정 총무가 지난 4일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식 사과를 표명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홍정 총무가 지난 4일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식 사과를 표명했다.

한국의 에큐메니칼 진영이 외쳐왔던 ‘치유·화해·평화’의 가치가 진정성이라는 시험대 위에 올랐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홍정 총무가 지난달 30일 노태우 전 대통령 영결식 종교예식에 참석해 기도문을 낭독했는데, 이를 두고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난 것.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영결식 당일 “대승적인 통합과 화해의 차원에서 참석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학살 당사자의 철저한 사죄와 국민적 납득이 선행됐을 때 용인될 수 있는 것”이라며 “내부 구성원들의 반대와 이의제기가 있었음에도, 충분한 의견수렴과 설득의 과정 없이 국가장 참석을 강행한 것은 구성원들과의 연대와 공감, 합의를 중요시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에도 위배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도 지난 1일 성명에서 “5.18광주학살 책임자인 노태우 영결식에 기도로 참여한 이홍정 목사의 행보는 우리를 참담하게 만들었다”며 “정부의 국가장 결정에 마땅히 항의하고 문제제기를 했어야 할 NCCK의 이홍정 총무는 도리어 영결식에 참여하여 사죄와 용서, 화해를 언급하며 이것이 ‘구원행동의 증표’라 기도했다”고 비난했다.

논란이 일자 이홍정 총무는 지난 4일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공식 사과를 표명하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이 총무는 “5.18 광주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며 “교회협 총무로서, 가해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에 참여한 것은, 5.18 광주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지 못한 중대한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이 목사는 또 “본인의 기도 속에 담긴 사회적 화합에 대한 바람은 진실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역사적 정당성과 현실성을 얻기에 부적절한 표현이었으며, 전적으로 5.18 광주의 마음을 우선적으로 헤아리지 못한 본인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5.18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으며, ‘희생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온 모든 이들’, ‘이를 계승하려는 2030세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내의 동역자들’에게도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 총무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교회협 총무로서의 거취도 이제 곧 열릴 정기총회의 결정 앞에 사심 없이 겸허히 맡기겠다”고 했는데, 그는 지난 9월 실행위에서 총무 후보로 단독 추천을 받으며 연임을 사실상 확정 지은 상황이었다. 이 총무의 발언대로라면 정기총회 현장에서 연임 결정이 뒤집히고 새로운 총무 인선이 진행될 수도 있다. 이 총무의 사과로 사태가 일단락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사태는 에큐메니칼 진영이 외쳐왔던 ‘화해’와 ‘치유’, ‘평화’의 가치가 사안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에큐메니칼 단체들은 NCCK 총무의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을 두고 △5.18 가해자로서 망자의 철저한 사죄가 없었다는 점 △사죄의 진의를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 △망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여전한 점 등의 이유로 문제를 지적했는데, 그동안 에큐메니칼 진영이 북한이나 일본에 대해 보여온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이나 한반도를 식민지배했던 수탈자 일본에 대해서도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동일한 기준을 제시해왔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NCCK가 입장문 통해 애도를 표했다.

당시 NCCK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으며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그가 민족의 자주를 위해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국내에서 불거진 ‘조문파동’에 대해서도 교회협은 “우리 측 조문사절단이 장례식에 참석하는 방안을 검토해 주길 바란다”고 적극적인 지지에 나선 바 있고,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는 조사와 함께 실제 조문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전쟁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고, 이에 대한 북한의 사죄가 없었다는 점,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여전한 점을 이야기하자면 북한과의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런가하면 2019년 과거사 문제로 국내에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한창일 때도 NCCK는 일본 종교·시민사회와 함께 ‘한·일화해를위한플랫폼’을 구성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비롯한 식민지배의 피해자들이 아직 살아 있고, 진정성 있는 사죄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련의 일들이 가능했던 까닭은 평화를 일구는 종교의 역할, 특히 에큐메니칼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NCCK 총무의 노태우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도 같은 맥락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갈수록 좌우 대립이 극심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기대하는 바는 분열보다는 화합에 있다. 한국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이슈인 ‘세월호’에 대해서도 교회협을 비롯한 에큐메니칼 진영이 취해온 태도도 결국엔 ‘막힌 담을 허무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화해와 치유, 평화의 도모가 아닌가.

한신대 한강희 교수(신학부)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화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됐다”며 “에큐메니칼 운동이 화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만큼 갈등을 부추기는 것보다는 건설적인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예장 통합과 감리회 등 에큐메니칼 진영의 굵직한 교단 내에 반 NCCK 정서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며 “에큐 진영에 더 큰 혼란과 분열이 올 수 있으므로 이홍정 총무의 거취에 대한 부분도 그가 사과하는 선에서 일단락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의견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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