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대접 통해 빈부의 경계선 허물고 ‘평등’의 메시지 전달
상태바
손 대접 통해 빈부의 경계선 허물고 ‘평등’의 메시지 전달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1.10.13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일상생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 손 대접(3)

앞에서 언급한 초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실행한 손 대접이란, 오랜 친구나 가족들에게 베푸는 그 친절을 나그네에게도 동일하게 베푸는 것을 의미했다. 그 대상은 비천한 이들, 보호받지 못할 나그네들, 정처 없는 이국인들이다. 이런 점이 유망한 손님들에게 보상을 기대하며 베푸는 야심적인 손 대접과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락탄티우스는 “정의의 본질이 우리가 사랑하는 친척들에게 베푸는 것처럼 친절하게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나그네 대접을 정의와 동일시한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를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아무도 보답할 수 없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우리의 참되고 의로운 일”이자 하나님과 연관된 일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원칙은 사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정신이다. 누가복음 14장 12절 이하에서,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마25:35)라는 말씀은 기독교회의 손 대접 전통에서 항상 중시되어 왔던 본문이었다. 이런 가르침과 더불어 초기 기독교회는 아래의 세 가지 현실이 손 대접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되었다고 크리스틴 폴은 말하고 있다. 첫째, 초기 교회는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이방인들을 교회 공동체에 편입시켜야 하는 현실적인 요구가 있었다. 초기 기독교회는 음식을 대접하면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긴장을 해소하고 경계선을 허물었고, 이를 통해 평등, 변화된 관계, 공동생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다. 

둘째,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전도자들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었는데, 그들은 다른 이들의 대접을 받았다. 전도자들을 대접하는 것과 복음의 전수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손 대접을 통해 순회 전도자들, 신앙 때문에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추방된 자들, 인근의 가난한 이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었다. 셋째,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자의 가정집에서 정기적인 예배를 드렸다. 따라서 손 대접은 다른 성도들을 섬기는 자연스런 요구이자 필요였다. 이것이 신자들 간의 가족적 유대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켜 주었다. 이런 현실에서 손 대접 전통은 중시되었고, 그것은 하나님 사랑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또 그것을 통해 일상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발견하며 살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초기 기독교회의 손 대접 전통은 서서히 퇴조하게 된다. 나그네에 대한 배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와 동시에 사회 환경도 영향을 끼쳤다. 여행자들을 위한 간편한 숙소가 생겨나고 그 숙소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취할 수 있게 되자 손 대접의 효과는 줄어들게 되었고, 숙박시설은 점차 상업화되기 시작한다. 자선기관이나 국가기관에서 제공하는 사회복지 사업으로 궁핍한 이들을 대접하는 일은 관료화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궁핍한 자를 돌보는 일은 공공복지로 여겨졌고, 점차 보호받을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 위한 병원(Xenodochia)이 세워졌는데, 주목 받은 최초의 병원은 370년 무렵 가이사랴 감독 바실(Basil)이 설립한 병원이었다. 이런 사회적 변화가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손 대접의 효과를 약화시킨 것이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