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누구보다 행복한 목회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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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누구보다 행복한 목회자입니다”
  • 임종택 목사 / 행복을전하는교회
  • 승인 2021.10.1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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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간증수기 당선작 - 행복을전하는교회 임종택 목사 (상)

목사안수 전 사역 전념 위해 안정된 직장 퇴직
교회 위기, 복음전파에 더 집중하며 정면 돌파

백석총회 목회협력지원센터는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운 목회 현장을 격려하고 참신한 목회 대안을 발굴하기 위해 ‘목회간증수기’를 공모했다. 다수 작품이 응모한 가운데 생생하고 은혜가 넘치는 간증 작품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기 작품 중 목회협력지원센터 추천을 받아 게재한다.

목회협력지원센터 목회수기공모전 시상식에서 임종택 목사가 센터장 이정기 목사로부터 상패를 받고 있다. 

1998년 3월 광은기도원에서 실시한 총회 강도사교육 중에 주님이 내게 말씀으로 찾아오셨다. 그 주간에 교회 학생부에서 설교한 본문 말씀, 그런데 주님은 그 본문으로 다시 내게 질문하시며 찾아오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 목회하기 위해서 신학 공부했다면서?” 
“맞아요. 그랬어요.” 
“그럼,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은 내게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데, 나는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서 고개를 떨구었다. 내 안에 감추어진 마음들과 숨겨진 영적 상태들이 다 주님 앞에 발각되어서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발가벗겨진 심정이었다. 
그 당시 나는 중앙대학병원 정형외과에서 근무하면서 학교를 다니던 중이었고, 작은 교회에서 유초등부와 학생회 전도사로 섬기는 중이었다. 목사안수를 앞에 두고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던 중이었다. 병원이 든든한 직장이었기에 그곳에 더 머물면서 공부를 조금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병원 원목실에서 원목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도 있었기 때문에 사역의 길을 조금 늦추고자 하는 다른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 동기생들과 대화 할 때면, “전도사님은 비전이 뭐예요?” 하고 묻곤 한다. “저는 교수가 되려고요”, “저는 유학하려고요” 하며 다들 거창한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네~ 저는 목회하려고요. 개척 목회를 생각하고 신학교에 왔어요”하고 답했다. 그랬던 나였다.
그런데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해 오시는 것이 아닌가. 아주 짧은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내 심장이 쿵쾅거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쏟아졌다. 뭐라 말할 수 없어 오랫동안 성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안에 결단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졌고, 그 후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그때가 IMF가 시작되는 시기라 모두가 만류했고, 좀 더 신중 하라는 권고를 받기도 했다. 유혹이었을까? 총무과에 사직서를 제출하러 간 그 날, 총무과 직원이 하는 말, “왜 그만두세요? 이번에 진급되셨는데요.” 하는 것이다. 
‘이건 뭐지?’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의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이었고, 전혀 미련이 남지 않는 결정에 마음을 얹었다.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에 더 더욱 신뢰하는 마음이 강해졌고, 오히려 더 당당하고 태연하게 “네, 저는 이제 가야할 길이 있어서요”라고 말하며 주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더욱 다잡게 했다. 

신학공부 위해 예비하신 직장
사실 이 직장은 주님이 예비해 주신 직장이기도 했다. 신학교를 다닐 수 있는 직장이 필요해서 기도하던 중에 주님은 이 직장으로 인도하셨다. 처음 병원에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을 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총무과에 가서 이력서를 제출했더니 갑자기 총무과장님이 부르셨다. 잠깐 면접을 보자고 하신다. 
그러더니 대뜸 “신앙생활 하십니까?”하고 물었다.
“네, 기독교인입니다.” 
“아 그래요. 그럼 오늘 면접하고 가실 수 있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면접은, 행정 부장님을 만나고, 정형외과 과장님을 만나며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모두가 기가 막힌 질문들을 하신다. 
“신앙생활 하십니까?” 
그리고 하시는 말씀들이, “신앙생활 하시면 성실하시겠네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나 버렸다. 그리고는 총무과장님이 “내일부터 아니면 내일 모레부터 출근 가능하시죠?” 묻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분명 이 병원은 기독교 병원이 아니다. 지난 일이지만 총무과장님은 불신자이다. 나중에 입사해서 알게 된 것이었지만, 그 자리가 6개월 동안 공석이었단다. 수많은 사람들이 면접을 거쳤는데, 아무도 뽑히지 않았는데 나는 하루 만에, 아니 몇 시간 만에 면접을 치르고 이틀 후에 출근하게 되었다. 
주변에 직장 동료들은 내게 물었다. “무슨 빽이 있는 것 아닙니까? 누구 빽으로 들어오셨습니까?” 
그렇다. 나는 안다. 나는 하나님 빽으로 이곳에 들어온 것이었다. 내가 직장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을 때 주님은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머물러야 할 직장을 예비해 주시고, 모든 사람의 발을 막으시며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직장에서 학교까지 20분 거리였다. 저녁 6시에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에 직장이 멀면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데 4시 30분이면 직장 업무가 정리된다. 게다가 과장님은 나를 다섯 시에 퇴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9년을 근무했던 곳, 마치 어미의 자궁 안에 나를 안전하게 두었다가 이제 세상으로 출산시키는 그런 곳, 그 출산의 시간도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추어서 일하셨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행복을전하는교회 성도들이 함께하는 모습.

“무명 헌금들은 교회 자양분이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사역지를 찾는 중에 지금 교회에서 전임 사역자로 섬기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하면 웃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나에게 물을 때 “난 정말 행복한 목회자입니다” 그렇게 대답한다. 난 내가 정말 행복한 목회자라고 생각한다. 정말 나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한 행운아 목사라고 생각한다. 
지금 섬기는 교회에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목사안수를 받았고, 부임한 지 7개월 만에 담임목사가 되었다. 전임 목사님께서 가정문제로 미국에 잠깐 안식년으로 나가시는 바람에 내가 임시로 담임을 맡게 되었다. 
1년 후에 돌아오시겠다던 목사님은 차일피일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고, 미국에서 이민 목회를 하시게 되었다. 그 일로 교회 장로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의논하셨던 모양이다. 전임 목사님도 귀하고, 지금 사역하는 임 목사님도 너무 귀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여러 날을 기도하시고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께 전화 통화로 사역 문제를 정리하셨다. 전임 목사님께서도 흔쾌히 이 일을 받아들이시고 나를 담임목사로 사역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장로님은 은퇴하시면서 “목사님, 제가 여기 교회에 계속 다니면 목사님 목회에 장애가 됩니다. 저는 여기까지가 제 몫입니다.” 그러시고는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로 옮겨 떠나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였다. 그저 부족하였기에 기도하는 것 외에, 그리고 말씀 앞에 순종함으로 겸손히 섬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지도자가 되어 주셨고, 때마다 시마다 길을 열어 걷게 하셨다. 
처음 사역할 당시 교회는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교회를 건축한 직후에 IMF를 만나면서 은행 부채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자를 내지 못해서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집중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을 전도하고, 전도 집회를 하는 것에 마음을 집중했다. 그런 우리 모습이 귀했는지 하나님께서는 그때 우리 교회에 필요한 까마귀들을 보내셔서 교회 이자 문제를 그때그때 마다 감당해 가게 하셨다. 
전혀 모르는 성도 분이 청소년 집회에 오셔서 어떤 날에는 천만원, 어떤 날에는 2천만원, 그냥 강단 위에 헌금해 주시고 가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꼭 필요한 금액을 주님은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공급하시면서 고비 고비를 넘길 수 있게 하셨다. 때때마다 새벽 강단에 올려진 이름 모를 무명의 헌금들은 우리 교회의 위기를 넘어가게 하는 은혜의 자양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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