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두려움과 불안을 딛고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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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두려움과 불안을 딛고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라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1.09.28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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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 (사 7:9)

전쟁은 두려운 일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강하다면 두려움은 더 커집니다. 아하스 당시 주변 국가들을 제압하고 패권을 키우던 아람이 북 이스라엘과 힘을 합쳐 쳐들어온다는 정보에 유다 백성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백성의 마음을 다잡아야 할 아하스 왕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7:2)” 숲이 바람에 흔들리듯 흔들리는 마음. 시적인 표현이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내셨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계략을 세워 유다를 차지하겠다 하지만 그 일은 실패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7절)” 그런데 이 약속에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아하스와 유다 백성의 믿음이 그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9절)” 7절과 9절. 약속과 실현. 그 둘을 잇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믿음을 행사하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실행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징조를 요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노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사야의 답은 신속하고 준엄합니다. “다윗의 집이여 들으라.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는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내 하나님을 괴롭히는구나(사 7:13)” 충격적인 표현입니다. 징조를 사양한 것이 왜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일이었을까요? 아하스의 사양이 하나님을 수고롭지 않으시게 하려는 배려심은 아닐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속마음을 아십니다. 아하스가 하나님 앞에 징조를 구하지 않은 것은 불신에서 나왔습니다. 이미 그는 또다른 강대국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고 군사지원을 받아 아람-이스라엘을 저지하려고 마음을 정했던 터였습니다(왕하 16:7~9 참조).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봐,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실망할 것 같아서 위축된 마음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나 아하스는 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왕입니다. 그에게는 실패의 두려움과 불안을 딛고 믿음으로 서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어떤 징조든 구하라는 것은 예언자의 충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 명령의 거부는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는 대로 허락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아하스는 몰랐습니다.

인생에는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할 수 없는 일들이,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해서는 안 되는 지위가 있습니다. 비를 내려달라 기도회를 열면서 우산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신이라는 이야기처럼, 아하스가 하나님의 약속을 참으로 믿었다면 놀랍고 신비로운 징조를 기쁜 마음으로 요청했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와 유다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징조를 요청하지 않은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 스스로 징조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7;14, 16)” 승전의 약속과 함께 먼 훗날 메시아 그리스도의 도래를 알릴 이름 임마누엘이 주어졌습니다. 이렇게나 열광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그토록 영광스러운 선물이라니요! 믿지 못하고 서지 못하는 우리에게 한 줄기 빛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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