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또 묻는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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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또 묻는 돌봄
  • 김종생 목사
  • 승인 2021.09.0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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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생 목사/한국교회봉사단 상임이사

“윌, 뭘 해드릴까요?” “베개가 불편하네요.” “어떻게 하면 되지요?” “내 머리 밑에 손을 넣고 목을 천천히 들어요.” 2016년 티아 샤록 감독의 <미 비포 유>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전신마비 환자 윌의 간병을 맡은 루이자는 묻고 또 묻는다. 무엇이 필요한지와 그것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리고 원하는 대로 잘 됐는지를 거듭 묻는다. 간병인 루이자가 의도하고 생각하는 병간호가 아니라 환자인 윌이 원하는 내용과 방법을 들으며 윌의 필요에 따라 궁극적으로 윌의 만족에 이르게 한다. 제목 ‘Me before you’의 의미에 대해 ‘Who I was before I met you’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나’라는 뜻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당신을 만난 후의 나’ 곧 상대의 욕구에 자신을 맞춰 나가는 것이 진정한 돌봄임을 증언해 주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한국 정부 협력자들과 가족들이 지난주 입국하여 충북 진천의 인재개발원에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한국 교계는 2007년 한국인 피랍사태로 인한 아픔, 여행금지 국가 선정, 선교사역 상 여러 제약이 많은 나라로 조금은 불편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한국 해외 선교를 크게 위축시키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391명의 협력자를 혐오의 시선이 아니라 사랑과 포용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 환영하는 진천의 기독교계와 이들을 환대하려는 한국교회를 보면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간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어디 아프간뿐이겠는가? 얼마 전 두 번째 강진으로 피해를 본 중남미 진흙 쿠키의 나라 아이티도 그렇고, 내전으로 홍역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도 그럴 것이다. 한국교회가 우는 자들과 함께하려는 크고 작은 움직임들은 고무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제공자인 한국교회의 익숙한 문법대로 하면 곤란하다는 점을 같이 공유하고 싶다. 이러한 나눔은 해외에만 해당한 것이 아니라 국내의 소외된 이웃을 향한 섬김에도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제공자가 원하는 식의 후원내용과 방법은 지양되어야 한다. 아프간의 조력자들 역시 그들의 현황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어떤 부분인지를 가장 먼저 묻고 계속 물어가야 한다. 일방적으로 지원의 내용을 정하고 지원의 시기와 방법을 정하여 수혜자들을 객체화시키는 일은 한국교회가 시정 해 가야 할 과제이다. 먼저 제공자와 수혜자 간에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아울러 세분화하고 구체적으로 상대의 욕구에 맞춤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아프간 협력자들 79가정 391명 중 어린이들이 50%에 가깝기에 어린이 교육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그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여 살아가기 위해 직업이 필요하고, 그들이 머물 주거공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지극히 일반화한 그들의 필요를 제공자 중심의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손을 잡을 때 그들의 보편적인 필요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적 정서까지 촘촘히 배려할 때 나눔과 섬김은 감동이 된다. 제공자 중심의 편의성과 수월성만을 앞세워 일반화시켜 돕는다면 주고도 욕을 먹게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주님 역시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들에게 다가가 먼저 물어보셨다. “내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말이다. 의례적으로 한 두 번 묻고 마는 성의 표시가 아니라 영화 <미 비포 유>의 루이자처럼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섬김은 명분과 같은 대의가 아니라 세심한 맞춤의 배려가 주님의 마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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