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이 문제가 아니라 ‘혼탕과 혼욕’, 이교적 의식을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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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이 문제가 아니라 ‘혼탕과 혼욕’, 이교적 의식을 비판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1.08.31 0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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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일상생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목욕(2)

로마인들은 목욕을 즐겼고 그 시대 그리스도인들도 이를 거부해야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쉼이나 휴식이 필요하고 피곤한 일상에서 자신의 건강을 지켜가는 일은 소중한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여가를 이용하거나 목욕 하는 일 자체는 누구나 해야 하는 일상사이고 이를 문제시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그래서인지 고대 교부들 가운데 목욕에 대해 특별하게 교훈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 목욕을 하는 일이 비도덕적이거나 비신앙적인 일이 아니므로 교부들도 이런 저런 훈계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목욕탕은 일종의 사교장이었음으로 목욕은 몸 씻음 만이 아니라 인적 교류, 정보의 유통 등 사회적 기능을 했다. 노출 자체도 문제시되지 않았다. 금욕적인 성격이 강했던 테르툴리아누스 조차도 목욕은 건강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인정했고 자신도 목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목욕탕을 이용하는 이들을 위한 규율을 제시했는데, 절반은 의료적인 내용이었고, 절반은 도덕적인 것이었다. 이 글은 리용(Lugdunum)과 비엔나의 신자들의 불만을 담고 있었는데, 이들은 신자라는 이유로 공중목욕탕 출입이 금지 당했는데 그것이 기독교인들을 부당하게 취급했던 첫 번째 징표였다고 했다. 말하자면 클레멘스는 목욕을 금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지침을 정했을 따름이다. 조금 후기이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고백록에서 목욕에 대하여 한번 언급하고 있는데,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을 억제하기 위해 목욕을 했으나 슬픔과 비통한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목욕 자체를 금기시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행하던 혼탕에서의 혼욕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들이 문제시한 것은 목욕 자체가 아니라 혼탕과 혼욕이었다. 4세기의 구부로 살라미의 교부였던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of Salamis(c. 310/320~403)는 그 시대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혼욕이 일반적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수도인 로마 시 보다는 지방 도시에 이런 좋지 못한 풍속이 더 심했다고 한다. 클레멘스는 이런 혼탕에서의 혼욕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상사였다고 지적했고, 키프리아누스나 암브로스는 혼욕은 신자들만이 아니라 이교도들에게도 위험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기독교의 공인 이후에도 각 계층의 성직자들의 빈번한 혼욕 목욕탕 출입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어기는 평신도들도 출교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런 풍속은 비신앙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 보았고, 혼탕은 동성애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혼욕은 논쟁점이 되었고, 만일 혼욕탕에 자주 가는 것은 이혼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편만했다.

또 한 가지. 목욕을 정결 의식 혹은 세정식(洗淨式)으로 여기는 일에 대해 경계했다는 점이다. 당시에 목욕을 단순한 몸 씻음으로 여기지 않고 의식적 행위로 간주하는 이들이 있었다. 목욕을 유대인들의 정결의식으로 여기기도 했는데 이와 비슷한 의식은 에세네파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이런 경우 히브리서 10장 22절의 “몸을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라는 말씀이 인용되기도 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기도하기 전에 온 몸을 씻어야 한다는 생각이나 세례받기 전 의식으로서의 목욕은 미신이라고 가르쳤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성 세례요한 축제 때 바다로 가서 자기 몸을 씻어야 하다는 관행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교적’(pagan)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로마사회에 성황을 이루었던 거대한 목욕탕 테르메가 4세기경부터 서서히 쇠퇴했다. 기독교가 끼친 영향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이를 확증할 근거는 없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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