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골골짜기 빈들이라도 주님의 복음 들고 나갈 겁니다”
상태바
“아골골짜기 빈들이라도 주님의 복음 들고 나갈 겁니다”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1.08.18 03: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7년 카메룬 선교 펼쳐온 윤원로 선교사

1987년 선교사로 파송, 수도 야운데서 개척 목회
700명 현지인 출석, 20여개국 목회자 양육 사역

아프리카 선교사를 꿈꿨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선교사가 될 만한 체질도 체력도 아니었고 성향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부흥시키면 선교사들을 많이 보내야겠다는 생각 정도는 하는 신학생이었다. 

그랬던 윤원로 선교사(야윤데센터교회 담임목사)가 카메룬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살아온 세월만도 37년이다. 해외를 마음껏 한번 다녀보고 싶다던 한 신학생의 삶은 1984년 전 세계를 순회하는 선교선 둘로스 호에 탑승하면서 송두리째 바뀌었다. 3년 후 선교사로 아프리카에 뿌리를 내렸고 지금은 튼튼한 거목으로 아프리카를 지켜내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일년 동안 고국에 머물던 윤 선교사는 얼마 전 백신접종을 마치고 조만간 선교지로 돌아간다. 출국에 앞서 지난달 22일 신도림역 인근 카페에서 만나 삶과 사역에 대한 간증을 들었다.  

윤원로 선교사는 37년 동안 아프리카 카메론에서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목회자들을 양육하는 사역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향한 부르심
“마음속에 너는 왜 선교사로 오지 못하느냐는 울림이 자꾸 생겼습니다. 이유는 많았죠. 언어도 안 되고 음식도 가리고 성격도 내성적인데다 까칠합니다. 선교사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평화가 없어요. 식욕도 없고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윤원로 선교사는 서울신대를 다니면서 영어도 배울 겸 인천항에 들어오는 선박에 올라가 복음을 전하는 외항선교회에서 활동했다. 때마침 전 세계를 순회하는 OM선교회 둘로스호가 국내 입항했다. 그는 2년을 목표로 승선했다. 

전 세계 40여개 나라 300여명 청년들이 함께 생활하는 둘로스호 생활은 몸무게가 2년 동안 10Kg이 빠질 정도로 무척이나 고됐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배 안에서 그를 강하게 훈련시켰다. 마침내 2년 선상 생활을 마치고 비행기 편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카메룬에서 하선했다. 당시 현지에서 살던 한국인 부부가 그에게 찾아왔다. 

“대뜸 전도사님 환영합니다. 이제 카메룬에 선교사로 오셔야죠 하는 겁니다. 한국에서 목회할 거라고 말씀 드렸는데도 3년 반 동안 기도했고 처음 도착한 제가 기도응답이라는 겁니다. 막무가내에요. 그 때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불러주시면 아프리카 선교사로 오겠다며 기도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윤 선교사에게 이 부부는 바울에게 마게도냐 사람들이 손짓하는 환상 같은 것이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심정이었지만, 그는 아내와 함께 일 년 동안 선교지로 나갈 준비를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여권 발급이 어려울 때여서, 수개월을 기다리던 여권이 나왔을 때는 감사예배까지 드렸던 기억도 있다. 

하나님은 버틸 힘을 주셨다
아내와 함께 생면부지의 땅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현지인 개척 사역을 시작했다. 영어도 아닌 프랑스어를 쓰는 이 땅에서 갖은 고생은 다한 것 같다. 굶은 것은 예사였다. 동양인을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현지인들의 차별도 심했다. 풍토병으로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후원 교회가 선교비를 송금했는데 은행 문제로 수개월 동안 돈이 도착하지 않아 쌀과 간장으로 버틴 때도 있었다. 돌이 된 딸 사진 한 장 찍어주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마음이 쓰리다. 

“우리 딸이 2살, 아들이 1살인데 쌀이 떨어졌습니다. 온 가족 강제 금식을 선언한 적도 있습니다. 대중교통에 해당하는 택시를 탈 차비가 없어서 아내가 기사에게 사정해서 옷을 주고 탄 적도 있습니다. 사역자로서 자존심이 있어서 누구에게 손벌리지도 못했었지요.”

초창기 윤 선교사와 가족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동양 종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단 취급까지 당했다. 윤 선교사는 버텨냈다. 치열하게 언어를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선교사역에 임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특히 두 자녀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한번은 다섯 달 된 우리 아들이 포도를 사달라고 조르는데 살 돈이 없었습니다. 가게에서 포도 몇 알을 몰래 가져왔나본데, 누나와 며칠 동안 사탕처럼 빨아먹고는 냉장고에 넣어놓다가 둘이 상의해서 깨물어 먹었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세월이 흘러도 묵직하게 남은 기억이다.
한때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녀들은 국내에서 대학을 나와 잘 자라 결혼까지 했다. 딸은 통번역대학원 졸업 후 방송사 PD를 하다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처럼 아프리카 선교사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아들에게 아프리카는 고향이다. 

목회자들에게 성경 읽히기부터
그가 시무하는 야운데센터교회(MEC교회)는 매주 출석하는 현지인 성도가 700여명 이상일 정도로 부흥 성장했다. 이슬람, 가톨릭, 개신교 인구 비율이 20% 정도로 비슷한 카메룬에서 그것도 한인 선교사가 하는 교회에서는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이 교회는 카메룬, 차드, 코티드부아르, 부르키나파소 등 인근 불어권 국가에 200여개 교회를 개척하기까지 했다. 

사역이 일어난 비결은 성경 말씀에 있었다. 윤 선교사는 복음주의 기독교가 5% 정도 밖에 안되는 이 땅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현지인 목사의 90%는 성경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요. 스스로 목회자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치유와 같은 주술적 신앙이 접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목사가 부인을 여럿 두기도 합니다.”

야운데센터교회에 엘리트 출신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한다. 장관이나 지자체장, 교수, 대학생 등 교인들은 주술적 신앙이 아니라 성경대로 말씀을 전하는 교회를 찾아다니다 윤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교회에 정착하곤 한다. 

윤원로 선교사는 근본 원인을 목사에게서 찾았다. 그리고는 목회자 교육을 시작했다. 목사가 제대로 서야 교회가 바로 설 수 있고 교인들을 바르게 양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담임목회도 하지만 목사들이 성경을 읽게 하는 것을 사역방향으로 잡았습니다. 주변 20개 나라를 돌면서 초교파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동양인 목회자가 하는 세미나에 시큰둥하다가 우리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이 열심히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 성장 비결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르칩니다. 성경은 기초 체력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부흥할 수 있게 됩니다.” 

윤 선교사는 담임목회와 함께 주변 20여개국 현지 목회자들을 양육하는 세미나 사역을 개최해오고 있다. 

 

“‘아비’와 같은 모델 사역 일으킬 것”
윤 선교사는 코로나 때문에 고국에 돌아와 약 1년 동안 지냈다. 37년 선교 사역 중 최장기간이다. 10여년 전 3개월 동안 교회를 비웠을 때는 교인이 절반이나 줄어들어 걱정했지만, 그동안 현지인 교역자들이 잘 성장해 교회를 지켜나가고 있다. 

“이제 내가 없어도 교회는 잘 돌아갑니다. 매주 설교만큼은 대부분 내가 했는데, 이제 큰 예배도 부교역자들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내가 없어도 잘되어야 하니까요.”

67세가 된 윤원로 선교사는 그렇게 선교 후반기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선교지를 서둘러 이양하고 다른 곳으로 사역자가 떠나야 한다는 선교이론에 대해서는 반대를 분명히 했다. 특히 아프리카에는 아비와 같은 모델 교회가 필요하다. 모범을 보면서 부족한 교회들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아비론’이라고 표현했다.

“언어만 제대로 하려고 해도 10년은 걸립니다. 사역을 본격적으로 펼치면 또 10년입니다. 그런데 한국 선교사 평균 재임기간은 10년 정도에 그칩니다. 이제 사역을 좀 하려고 하면 그만두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마음껏 사역할 수 있도록 한국의 교회들은 기다려주고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장 뜨겁게 부흥하던 1980년대 한국을 떠났던 선교사에게 침체에 빠진 현재 한국교회는 어떻게 비칠까 질문했다. 원인과 해법도 함께 물었다.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모습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제가 신학공부를 할 때는 부르시는 어느 곳이나 가겠다는 각오들이었는데, 요즘에는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겠다는 찬양은 금지곡이라고 하더라고요.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가 나를 위해 나갈까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이인창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