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과는 다른 쟁점…연명의료중단,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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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과는 다른 쟁점…연명의료중단, 어떻게 봐야 할까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1.08.17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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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십계명, 다시 쓰는 신앙행전(26) 안락사 논쟁

제6계명 : 살인하지 말라(출20:13)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의 핵심은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기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있지만, 오남용될 가능성도 있어 안락사화 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의 핵심은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기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있지만, 오남용될 가능성도 있어 안락사화 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2018년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장례엑스포에 ‘안락사 캡슐’이 등장했다. ‘사코’라 불리는 이 캡슐의 제작자는 “캡슐에 사람이 들어가면 내부가 질소로 가득 차게 되면서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끼지만 급속하게 정신을 잃은 뒤 죽게 된다”고 설명했다. 

흔히 ‘안락사’라고 하면 더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가까운 시간 내에 죽음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환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생각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의사의 판단으로 환자가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거나, 더는 살 의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안락사를 시킬 수 있다. ‘사코’의 제작자는 “언제 죽을지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권리”라며 캡슐의 디자인을 공유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을 따르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국내에서도 제한적으로나마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다. 2015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이용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2018년부터 본격 시행중이다. 

이 법에 따라 연명의료 치료 중단을 선택한 환자는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4가지의 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

이같은 결과가 있기까지 결코 단순하지 않은 논쟁들이 있었다. 국내 안락사 관련 논쟁에서 ‘보라매병원 사건’은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1997년 12월 4일. 보라매병원에서 응급 뇌수술을 받고 인공호흡기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던 김 모씨의 부인은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병원에 퇴원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의사 양 모씨는 퇴원을 해서 인공호흡을 중단하면 환자가 사망할 것이라며 극구 말렸지만 끝내 부인의 주장을 꺾지 못했다. 양 씨는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뒤 환자를 퇴원시켰다.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옮겨진 김 씨는 인공호흡 장치 제거 5분 만에 호흡곤란으로 사망했고, 검찰은 의사 양 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1심은 환자의 부인과 의료진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무려 7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대법원이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그런가 하면 2009년 식물인간이 된 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한 자녀들에게 승소판결을 내린 ‘김 할머니 사건’은 ‘안락사’라는 용어를 넘어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장과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비자연사의 하나였던 ‘안락사’에 대해 소극적인가, 자의적인가를 따져 가치판단을 달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락사 캡슐’ 등장…‘죽을 권리’ 주장하는 사람들
한국에서도 ‘소극적 안락사’ 허용, 오남용 요주의


다 같은 안락사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안락사만 가능하다.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네덜란드나,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호주, 스위스 등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소극적인 형태라 하더라도 자연사와 같을 수 없고, 의도적인 죽음임을 부인할 수 없으므로 여전히 논쟁거리들이 남아 있다.

특히 법의 적용을 받는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기 환자’라는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법에 따르면 전문의 한 명과 주치의 한 명이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게 되어 있는데, 두 명이 동시에 오진할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법이 시행된 지난 2018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법의 시행과 관련해 시스템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있어 잘못 활용하면 안락사화 될 수 있다. 선택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단국대 의대 정유석 교수는 “살인하지 말라는 윤리 규범은 전쟁이나 정당방위와 같은 예외를 인정하더라도 시대와 인종을 초월하는 인류의 보편적 윤리 규범이며 특히 생명유지를 돕는 직업인 의사에게는 절대적인 가치였다”며 “환자의 이익이 아니라 제삼자의 이익 때문에 안락사 시술이 남용될 소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매우 선별적으로만 시행되어야 하며 일종의 필요악으로서 최소한의 문만 열어두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백석대 장동민 교수(역사신학)는 “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그 자체로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마음대로 그 생명을 끊을 권리는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무조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최근 목회 관점에서도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임종 목회’와 ‘호스피스’ 등의 활성화를 주문했다. 장 교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죽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나쁜 것이 아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자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과정”이라며 “그러므로 기운이 다하고 천수를 누린 어르신들을 잘 보내어 드리는 것도 우리가 드려야 할 하나의 효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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