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기독교인, 재물로 ‘자기 사치’에 치중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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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기독교인, 재물로 ‘자기 사치’에 치중해선 안 돼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1.08.1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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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일상생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사치

교부들은 한결 같이 사치나 사치한 생활에 대해 반감을 표했다. 그들은 견유학파(the Cynics)를 따라 실용성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았다. 교부들의 가르침이 세욕을 추구하지 않는 자족하는 삶이었기에 견유학파의 실용성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리차드 엘더슨은 말하고 있다.

초기 교부들 가운데 클레멘트(Clem ent, c.150-215)는 부요(富饒)함을 변호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부의 추구를 정당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부 자체를 문제시한 것이 아니라 부에 내포된 위험을 보고 있었다. 그는 부가 얼마나 위험 할 수 있는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꼬리를 잡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물리게 될 뱀과 같은’ 것이었다. 부유한 기독교인은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자선을 위한 목적으로 올바르게 사용해야 했다. 그것이 자기 사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클레멘트는 동부 지방에서 행해지는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치, 값비싼 보석, 세공품과 드레스, 화려한 욕실, 호화로운 연회, 번쩍이는 마차 등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당시 재산이 있는 한가한 귀부인들은 부를 과시하며 애완동물인 원숭이와 공작새, 말티즈 개에게 애정을 쏟아 부었다. 오늘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지만 클레멘트는 당시의 이런 세태는 부의 과잉이 가져오는 사치스런 일로 간주했다.

클레멘트는 칼이 잘 들기 위해서 은으로 된 장식 못이나 상아(象牙) 손잡이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토기(土器) 램프도 황금 램프만큼 제 기능을 발휘하고, 상아로 만든 침대라야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염소 가죽도 화려한 침대보만큼 낫다고 보았다. 실용성을 중시하던 그는 이런 소소한 일들에 대해서도 검소한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화려하고 사치스런 삶의 추구는 세상적인 욕망일 뿐이라고 본 그는 검소하고 자족하는 삶을 가르친 것이다.

키프리아누스(Cyprian, c.200-258)는 소유물로 인해 생기는 괴로움을 논하면서 영혼의 수양을 강조했다. 그는 보석으로 장식된 술잔을 초조하게 마시고, 푹신한 침대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도둑에 대한 염려로 잠을 설치고, 소유한 재산에 연연하여 살아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물질에 예속된 부자들에 대해 경고했다. 하나님의 영이 계신 성전인 우리의 영혼이 변색될 황금으로 장식된 집에서 떠나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육신을 지나치게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우아한 팔찌를 끼고 있는 손목이 어떻게 쇠사슬을 찰 수 있겠는가? 어떻게 보석으로 장식된 목이 사형 집행자의 도끼에 찍힐 수 있겠는가? 어떻게 화려하게 장식된 다리가 억압 속에서 견디겠는가? 만일 우리가 하늘에 속한 것을 바란다면, 이 세상에 속한 장신구를 던져버려야 한다. 적당함(Comeliness)이 그 영혼의 신성한 의복이 될 것이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장식품으로 치장하라. 소박함에서 순백을 얻고, 겸손함에서 불그레한 혈색을 얻고, 수줍음으로 당신의 눈을 채색하고, 침묵으로 당신의 입을 꾸미고, 당신의 귀에 하나님의 말씀을 불어넣고, 당신의 목에 그리스도의 멍에를 채우라. 자신에게 정직이라는 비단과 거룩이라는 마포와 겸손이라는 자줏빛 천으로 만든 옷을 입혀라.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을 당신의 연인과 배우자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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