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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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셋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1.06.1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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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하나님의 요구사항 / 신명기 6:1~9, 잠언 3:1~3 / 찬송: 252장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고역을 당하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기사와 이적으로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게 되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사막을 지나서 시내산에 이른 그들에게 하나님은 최초로 계명을 주셨습니다. 돌 판에 직접 쓰셔서 10가지의 계명을 주시면서 이 계명을 잘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그 명령을 잘 지켜 행하면 반드시 복을 내려 주신다는 약속까지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사랑의 동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에는 반드시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출 23:15)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 기간 동안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킬 것을 요구하십니다. 계 2장 1절 이하의 에베소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너희가 처음 사랑을 버렸노라”고 책망하시면서 “어디서 떨어졌는지 돌이켜 회개하여 처음 사랑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일평생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하며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죽음 앞에까지 꼭 지켜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과 명령을 잘 이행하여 복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소서.

윤양표 목사 / 경성교회


화요일 / 하나님의 능력대로 / 에베소서 3:20 / 찬송: 538장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신 분이십니다. 로마서 4:17~18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역사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을 통해 역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실 때 말씀으로 축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어긴 고로 복이 떠나고 저주가 임하여 망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 물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을 때에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린즉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은 역사합니다. 

둘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충만하더라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에너지는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말씀을 받은 후에는 반드시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셋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전쟁이나 기근, 전염병, 환난이 있을 때 유일한 해결 방법은 기도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파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도 그 안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 쇠사슬이 끊어지고 감옥문이 열렸습니다. 의인의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시고 그 능력이 역사합니다. 

•오늘의 기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대로 승리와 평안이 함께하게 하소서.

김만열 목사 / 청주영안교회


수요일 /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 고린도후서 5:8~9 / 찬송: 549장

여러분들에게는 ‘이것만은 꼭…’ 하는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적인 것입니까, 영적인 것입니까? ‘차라리 몸을 떠나’, 즉 천국에 가는 것이 소원인데, 그러기 위해서 이 땅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바울의 소원처럼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소원이 있는 줄 압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영원한 가치가 있는 영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이 일에 죽든지 살든지 목숨 걸고 몰두하려는 자세, 이 각오가 없으면 무슨 일이든지 용두사미가 되어 버립니다. 시작은 있는데 열매가 없으면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성도의 본분 아닙니까? 결국 이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자기 관리에 충실하겠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현실에 자기를 다스리지 못해서 나라를 어지럽히고 여러 사람 괴롭게 하고, 나아가 하나님을 망신시키는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큰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 하지말고, 성도로서 자기를 관리하는 일부터 충실히 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성도는 성도인 것을 감추어도 안 되고 자기 관리에 실패해서도 안됩니다. 당당하게 자기를 드러내고 당당하고 바르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흐뭇하게 해드리는 길입니다.

•오늘의 기도

살든지 죽든지 주님위해 살겠다는 각오로 살게 하옵시고 주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유영삼 목사 / 영광교회


목요일 / 우리의 수고와 헌신을 다 아십니다 / 요한계시록 2:1~7 / 찬송: 338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주는 사람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왜 그렇게 밖에 못하느냐고 책망을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데도 불구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낙심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도들을 오른손으로 붙잡고 계신 예수님이 환난과 핍박과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며 참고 견디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안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사랑의 수고는 피를 흘릴 정도의 고통이 따르는 수고였습니다. 그들은 피를 흘릴 정도의 고통스러운 수고도 천국을 소망하며 인내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의 헌신과 수고와 인내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들을 예수님은 다 아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불의한 것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용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사랑의 수고나 소망의 인내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불의와 불법을 보고서 나서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받는 고난을 견디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지금 우리도 비록 고난이 있고 시련이 있어도 두려워하거나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내야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이 우리의 수고와 헌신을 다 아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실 줄 믿고 끝까지 인내로서 사명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온재천 목사 / 광혜교회


금요일 / 아버지의 역할 / 누가복음 11:11~13 / 찬송: 577장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가장 가깝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생후 1~2년 동안 어머니는 아이를 양육하고 보살핍니다. 아이가 자라고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품 그 이상의 환경과 영향을 받게 됩니다. 발달과정에서 아버지가 주는 영향과 분위기는 어떤 상황보다도 아이에게 막중합니다. 대부분 어느 가정이든지 아버지의 직업과 사업이 주거지와 생활 수준, 그리고 사회 환경을 결정합니다. 

아버지의 역할과 영향력에 관한 이해는 중요합니다. 아버지는 외부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가족과 자녀에게 아버지 역할로서 영향력을 끼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역할이나 직업에 의해 사회적인 압박을 받거나 책임감을 느낍니다.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압박을 받을 때, 좀 더 가족과 자녀들을 위해 선의를 발휘해야 하겠다는 긍정의 영향을 받습니다. 다양한 환경과 주변의 흐름이 아버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졌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역할로서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영향력이고, 아버지 활동이 능력을 드러냅니다. 사회와 직업, 가정과 교회, 아버지의 예배와 교회 봉사를 보는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교회 섬김을 배웁니다. 가장 좋은 교육은 삶으로 가르칩니다. 

당신이 아버지입니까? 아버지로 사는 삶은 선합니까? 하늘 아버지를 보여주는 아버지이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하나님을 보여주는 아버지 되고 싶습니다.

정석동 목사 / 창성교회


토요일 /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마가복음 2:13~17 / 찬송: 293장

예수님께서 세관에서 일하고 있던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 레위에게 “나를 따르라” 말씀하자 레위는 일어나 주님을 따릅니다. 그리고 따르도록 본을 보이셨습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라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나를 죄인으로 여길 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의인이라 생각하였기에 주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교만이고 죄악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악합니다. 우리들 가운데 주님의 고치시는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정죄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와 반대로 남을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병든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레위에게 친히 오셨습니다. 그리고 레위에게 하신 말씀을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그리고 부르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오늘의 기도

주님의 부르심에 늘 감사하며 늘 겸손함으로 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서기성 목사 / 새희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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