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를 팔아 ‘필요에 따라’ 분배하며 사랑을 실천했던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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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를 팔아 ‘필요에 따라’ 분배하며 사랑을 실천했던 초대교회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1.06.0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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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재산과 부에 대한 가르침(5)

초기 기독교회는 부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행 2:44~45)고 한다. 예루살렘의 교회는 재산과 소유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였음을 보여주고 있다(참고, 행 2:43~47, 4:32~37, 5:1~11, 6:1~7 등).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부의 분배와 공유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을 볼 수가 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다.”(4:31~35).

이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 구성원들은 소유와 재산을 공동으로 이용하면서 더불어 살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재산과 소유를 팔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행위는 필요한 경우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즉 강제적인 것도 아니었고, 보편적인 것도 아니었다. 또 모든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모든 재산을 처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필요에 따라’(행 2:45, 4:35), 곧 팔아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자신의 소유를 팔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점이다.

이 점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로 두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첫째로 대개의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행 12:12). “집에서 떡을 떼며”(행 2:46)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여전히 집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거기서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살 수 없더냐?”고 질책했는데(행 5:4) 이것은 재산의 소유권과 더불어 재산 헌납은 자발적인 행위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그들의 재산 중 얼마를 챙겨둘 만큼 이기적이었다는 점에 있지 않고 그들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처럼 가장한 행위에 있었다. 둘째, 재산을 파는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단회적 행동을 뜻하는 단순과거형이 아니라,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사도행전 2장 45절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ἐπίπρασκον)”라고 할 때 이 말은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핍절한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저들의 소유를 팔아 필요한 사람에게 분배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해 볼 때 초대교회는 재산과 소유를 팔아 ‘필요를 따라’ 분배함으로써 부를 공유하였는데, 이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었다. 사도행전의 기록자는, 자기 재산을 처분하여 나누어 주는 모범을 보인 인물로 바나바를(행 4:36~37), 자기 재산의 일부를 자신만을 위해 확보하려 했던 부정적 인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소개하고 있다(행 5:1~11).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있어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필요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일부를 숨겨 두었던 부에 대한 탐욕이었다. 이런 점에서 영국의 테일러 감독(Bishop John Taylor)은 “우리의 적(敵)은 소유 그 자체가 아니라 더 갖고자 하는 욕망”(our enemy is not possessions but excess)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초기 교부들은 부유한 이들은 가난한 자들 도와야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부에 대한 집착과 탐욕을 경계한 것이다.

부의 분배를 통한 소유의 공유는 물질에 대한 자유함을 의미했고, 이것은 헬라-로마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던’(행 2:47) 것으로 보인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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