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적 부흥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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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적 부흥 시작
  • 황혜연 목사 주사랑교회 담임, 한국교회역사연구실 대표
  • 승인 2021.05.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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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역사를 통해서 보는 한국교회의 전망 ⑥
황혜연 목사
황혜연 목사

교회의 부흥기(1956~1990)

연단기를 지나면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교회는 점차 활기를 뛰면서 안정과 부흥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부흥이란 내적 변화인 영적 각성과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새로운 활력이다. 부흥의 외적 결과로 양적 확장이 주어지기도 한다. 교회의 부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한국사회는 6.25전쟁의 후유증과 생활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교회들이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는 회개운동, 기도운동, 성령운동, 전도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교회가 연합하여 모이기를 힘썼다. 주일예배뿐 아니라 주중에 다양한 부서별 예배를 비롯해서 교회학교와 성경공부반이 운영되었다. 새벽기도에는 통곡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들이 일상이었다. 

한국 기독교사에 있어서 1907년 평양 대 부흥운동을 주로 말하지만 1956~1990년대에 남한에서 반세기 동안 전반적으로 일어난 교회 부흥을 외면 할 수는 없다. 

백석교단도 복음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8년 9월에 출범하였기에 대 교단으로 성장하는 동력을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민족 복음화를 위한 초교파적으로 대 전도대회가 있었다. 1973년의 빌리 그레함 전도대회, 1974년의 엑스폴로’74, 1977년 민족복음화성회 등을 들 수 있다.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레함 대 전도대회와 74 엑스폴로대회를 치르는 동안 전도를 통해 결신하게 된 수가 35만 명이 넘었다. ​이와 같은 대성회는 한국교회 부흥의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1907년 평양에서 대 부흥 운동이 일어난지 70년이 되는 이 해에 우리나라에 다시 부흥 운동이 일어나야 하겠다는 간절한 열망으로 1977년 민족복음화 대 전도 집회가 열렸다.

‘오직 성령으로’라는 주제 아래 연인원 150만 명이 동원되었다. 금식을 선포하고 낮이나 밤에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수십만 명이었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73년 빌리그래함 대 전도대회, 74년 엑스폴로대회, 77년 민족성회, 80년 세계복음화대회, 84년 선교100주년 대 성회, 88년 복음화성회 등 굵직한 대회를 치르면서 놀랍게 부흥되었다. 이러한 대성회를 개최함에 있어 분열을 거듭해 오던 한국교회가 교파의 담을 넘어 서로 협조하고 오직 복음을 위해 서로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연합하여 교회들은 함께 부흥하였고 교회마다 성도의 수가 증가하면서 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한국의 기독교인이 1천만에 이르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교회와 성도의 수가 증가하였으며 대형교회와 기도원과 수양관이 늘어났다. 각기 교단마다 신학교를 세웠고 배출되는 사역자를 통하여 요소요소에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를 개척할 때에 교회 없는 지역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1990년도에는 기독교인구가 1,200만이라고까지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 50대 교회 중에 한국의 교회가 24개가 포함되었다. 기독교가 전성기를 맞으면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가 함께 발전하게 되었다. 영적 회복과 부흥은 하나님의 은혜임으로 그 결과로 환경의 변화와 풍성한 결실도 따라온 것이다(사 30: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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