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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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스러움
  • 이찬용 목사
  • 승인 2021.05.11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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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용 목사의 행복한 목회이야기 (154)
이찬용 목사
이찬용 목사

경주 솔거 미술관에 지금 한국화 거장으로 불리는 박대성 화백님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통일신라 김생의 글씨체를 따라 만든 것으로 길이만 20m가 넘는 초대형 작품이고요, 가격은 무려 1억 원이나 한다는데요.

문제는 이번 주 전시실에 들어온 10세 정도의 아이가 작품을 밟고 만지고 눕기까지 하고, 뒤이어 들어온 형으로 보이는 아이도 마찬가지의 행동을 합니다. 당시 미술관에서는 눈으로만 감상해 주세요라는 문구는 있었지만 작품을 보다 더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접근금지 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더 황당한 것은 아이들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의 행동이었습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하지 말아야 행동 중 하나고요. 이를 모르는 성인은 사실 거의 없을 겁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그런 아이들을 말리기는커녕 CCTV를 보면 사진 촬영까지 하는 여유를 보입니다.

일단 아이들의 부모는 미술관을 통해 원작자인 박대성 화백에게 수차례 사과를 했다고 하고요. 박대성 화백님은 아이들이 다 그렇지 애들이 뭘 압니까? 어른들이 조심해야지라며 통 크게 용서를 해주었다고 하네요. 이어 복원할 수도 있지만, 이것도 뭐 작품의 역사로 봐야지라며 복원할 계획은 없다고 밝히기도 하셨고요.

로마 최대의 타락한 폭군으로 손꼽히는 네로(37~68) 황제의 석관 무덤을 지금껏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길가에 놓아둔 것은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의도도 있다 하고요. 독재자 무솔리니가 세운 기념탑이 현재 그 자리에 굳게 지키고 있는 것도 아마 후손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런 길을 걷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도록 배려한 것이 아닐까요?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AP) 당선작이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 설치되어 있던 신형철의 템플’(YAP 2016)은 건조된 지 35년 된 폐선을 건축물로 만든 작품인데요. 이 작품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들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훈을 주는 의미도 있을 텐데 천재 건축가의 작품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을까요?

어른스러움이라는 건 그렇게 악독한 황제의 무덤도 그냥 그대로 두고, 독재자 무솔리니의 탑도 그대로 두며 역사가, 후대들이 교훈을 얻게 하는 그런 것 아닐까요?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철거하는 우리 공무원들의 행태를 보며 안타까움과 속상함에 분한 감정이 드는 건 저만의 감정일까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향해 넉넉한 마음으로 대해 주신 박대성 화백님의 태도가 어른스러움의 모습인 것 같고요. 어쩌면 교회도 이런 어른스러운 모습의 리더들이 많아야, 다음 세대들이 그런 모습을 본받을 텐데 말입니다. 요즘 우리 교회 리더들은 교회가 성장하는 걸 더 이상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했던 사역들을 더 좋은 사람들이 들어오면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던 어느 목사님의 한탄이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 같이 들리는 깊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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