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부가 가져올 우상성과 영적 위험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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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부가 가져올 우상성과 영적 위험 경계해야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1.05.0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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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재산과 부에 대한 가르침(2)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에서 만큼 물질적 부가 축복으로 강조되고 있지는 않으나 신구약이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계시로서 연속성과 통일성을 지니고 있음을 고려할 때 신약은 구약의 가르침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신약시대는 현세적 복을 무시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가르치지 않지만(마 6:11,24; 딤전 4:4), 신령한 복을 더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후 4:8, 마 6:24)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약과는 달리 신약성경에서는 물질적 부가 가져올 수 있는 영적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예수님은 재산이나 소유, 곧 부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부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부단히 경고하셨다. 누가복음 12장 16절 이하의 어리석은 부자 비유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하고 물질적으로 부한 어리석은 부자에게 있어서 부의 소유(the possession of wealth)는 이 세상의 어떤 것을 추구하도록 유혹하고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위험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물질)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눅 12:31)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재물은 말씀에 대한 관심을 질식시키고 그 결실을 방해한다는 점을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선포하셨다. 즉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은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財利)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마 13:22)라고 하셨다. 땅에 있는 부는 거짓 안도감을 주고 영적 분별력을 흐리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부를 소유치 못하게 한다(마 6:24, 눅 12:16)고 하셨다. 재산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잔치를 거절하게 하는 영적 우매성을 지적하기도 했다(눅 14:19). 이처럼 신약에서는 물질적 부가 가져올 수 있는 영적 위험성, 곧 부요가 가져올 수 있는 우상성을 지적하고 있다.

교부들이 주목했던 바처럼, 재물(μαμωνάς)이 우상이 될 수 있음을 보다 분명하게 지적한 경우는 마태복음 6장 24~25절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예수님은 재물도 하나님과 같이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신다. 즉 부는 단순한 경제적 효용가치가 아니라 종교적 성격을 지닐 수 있으며, 본문에서 ‘섬기다’는 동사가 두 번이나 사용되었는데 예수님은 재물을 의인화시키고 일종의 신격으로 다루고 있다.

이처럼 부를 인격화 시키고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4절과 누가복음 16장 13절에서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를 섬기며 살도록 지음 받은 의존적인 존재로서 거기에는 두 주인(two masters)이 있음을 말씀하신 데서 더욱 강조되었다. 위의 본문에서 사용된 ‘섬긴다’는 동일한 헬라어가 로마서 6장 6절과 7장 6절에도 사용되었는데 이 두 본문의 문법적 의미를 고려해 볼 때 ‘섬긴다’는 종교적 행위는 복수의 대상을 가질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동시에 물질을 섬길 수 없고, 물질을 신뢰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두 가지 주된 대상에 동일한 헌신을 바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존 화이트는 “우리는 오직 한 가지 중심만을 갖도록 지음 받았다”(We were created to have one center)고 했다.

예수님의 강조점은, 부의 정당한 사용이나 의로운 재물에 대한 교훈, 혹은 부의 균형적 분배나 사회적 정당성 등 재물에 대한 윤리적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μαμωνάς) 자체가 하나님처럼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물신적 성격을 교훈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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