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단 영구결번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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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단 영구결번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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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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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용 목사의 스포츠로 읽는 선교

영화 ‘42’에서 해리슨 포드가 연기하던 인물의 이름을 아세요? 그의 이름은 브랜치 리키(브루클릭 다저스 단장)입니다. 늘 시가(담배)를 물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터프함을 마구 풍기는 인물로 설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브랜치 리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재키 로빈슨)를 데뷔시킨 리키가 미국 야구 자체에 일으킨 변화, 더 나아가 사회적 변화는 무엇이며, 신앙은 그 저변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이 말 들어 본 적 있나요? ‘운도 계획에서 비롯된다.’(Luck is the residue of design)

들어 본 것 같고 귀에 맴도는 익숙한 말 같죠? 이 말을 한 사람이 바로 리키라고 하네요. 이 한 마디에서 그의 철학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철저히 계획하는 일을 절대 등한시하지 않는 사람,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일에 요행 보다는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실행하는 사람 같죠? 사실 리키는 미국 야구사에서 확실히 주도면밀한 계획가이며 실행가이자 혁신가였습니다. 그가 야구사에 남긴 업적이 증명하는데요.

메이저리그 전문가 김형준은 리키의 업적을 4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체계적인 스프링캠프 첫 설계자. 둘째, 마이너리그 팜(Farm) 시스템 구축. 셋째 야구 통계 활용 선구자. 넷째, 인종차별의 벽을 허문 도전자. 1930-40년대가 리키가 활동하던 시대임을 감안할 때, 그의 시도와 실행은 혁신적 선구적 따위 표현이 충분치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많은 사람들이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그 재키를 칭송하지만, 글을 쓰며 그를 데뷔 시킨 설계자 리키를 향한 존경이 더욱 커집니다.

리키가 흑인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킨 이유로 거론되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리키의 대학 코치 시절 팀내 최고 선수인 찰스 토머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숙박 거부를 당했고, 이에 한탄하는 그를 보고 반드시 바로 잡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장 리키를 연구한 저술가들은 흑인 선수의 역량, 향후 사업의 확장성을 보고 추진했다고 해석하며 리키의 휴머니즘적 일화를 격하시킵니다. 그럼에도 사업성만으로 인종차별의 벽에 도전하는 모험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탁월한 현실성과 사업성을 보는 냉철한 리키, 그러나 그 냉철한 안목 이면에는 대학 코치 시절 흑인 선수 찰스 토머스가 당한 고통을 본 경험, 반드시 흑인 선수를 야구계로 진출시켜야 한다는 신념, 그 방향이 옳다는 양심이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그의 이 같은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요? 리키와 재키가 계약을 위해 만난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1945년, 리키는 26살의 흑인 야구 선수 재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훌륭한 흑인 선수를 찾고 있다네. 그냥 경기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야. 남들이 모욕을 줘도, 비난을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여유와 배짱을 가진 선수라야 하네. 한마디로 흑인의 기수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야 해. 만약 어떤 녀석이 2루로 슬라이딩해 들어오면서 ‘이 빌어먹을 깜둥이 놈아’하고 욕을 했다고 치세. 자네 같으면 당연히 주먹을 휘두르겠지? 나도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대응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구. 자네가 맞서 싸운다면 이 문제는 20년은 더 후퇴하는 거야. 이것을 참아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필요해. 자네가 그걸 해낼 수 있겠나?”(김형준_재키로빈슨을 등용하다 브랜치 리키 인용)

이어서 리키는 책을 들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네 뺨을 때리든지, 다른 쪽도 그에게 돌려라.’ 1920년대 출판된 조반니 파니니의 ‘그리스도의 삶’이란 책에서 인용한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에 재키는 “저는 볼이 두 개예요. 리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리키와 재키의 대화에서 그들의 신념, 태도를 형성하는 근간을 확인할 수 있죠.

바로 신앙,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실천한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이 야구라는 스포츠 영역에서 견디는 힘이 되어 미국 사회라는 공적 영역으로 확산되는 기폭제가 된 것입니다. 그의 일화는 특정한 공간만이 교회 또는 예배현장이 아니고, 스포츠 현장, 특정 직업 모두 예수를 따르는 교회이자 예배라는 점을 보여 주고 있지 않나요? 우리의 교회됨과 예배는 어디에서 나타나고 드려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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