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뭉쳐진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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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뭉쳐진 허수아비
  • 정석준 목사
  • 승인 2021.04.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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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119)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나의 모든 죄가 환하게 보였다.’ 은혜 받은 사람들의 거의 한결같은 고백이다. 그리고 ‘하염없이 흘러내린 눈물의 고백들이 모두 회개를 이루어 오늘의 내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십대에 처음으로 기도원을 갔었고 은혜 받으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하산할 때가 되었는데도, 통곡을 수반한 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부모님속이고 학교에 가지 않았던 그런 정도 가지고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은 금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모두하면서 평생을 산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이 어느새 교인이 되어있더라는 사실이다. 뒤늦게 이를 깨닫고, 노년에 눈물을 쏟으며 부른 노래가 있다. ‘왜 나를 구원해 주셨나요, why me Lord’이다. 전혀 교환의 가치가 없는 쓸모없는 인생을 생명의 삶으로 이끌어 주셨다는 고백이다. 낭비된 자신의 삶을(I’ve wasted my life), 나도 아는 나를(I know what I am), 당신의 손으로 붙잡아 이끄셨다는 것이다.(My soul’s in your hands).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는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이 펴낸 2018년의 공저이다.(a 2018 book by Harvard University political scientists Steven Levitsky and Daniel Ziblatt) ‘민주화 시대 이후’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독재자로 변화되는 모습을 설명한 책이 있다. 그런데 나오는 해석들이 모두 자기이해상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내가 죄인이다’라는 말은 들을 수 없다. 그땐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 한 시대를 이끌어가야 하는 자구책이었다. 라는 식의 자화자찬들뿐이다.

뭔가 업적을 내어 나를 드러내는 시절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있다.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어 한가하다 할 때 비로소 스며드는 두려움이다. 여기저기 길이 막히고,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간다고 푸념할 때다. 눈물범벅은 그때 일어난다. 내가 다만 모순투성이의 아무것도 아닌 한줌 흙덩어리의 쓰레기 같음을 깨닫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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