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까지 돌보던 ‘병원’은 내 평생 사역지…하나님이 진짜 주인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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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까지 돌보던 ‘병원’은 내 평생 사역지…하나님이 진짜 주인이셨죠”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1.04.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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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세브란스병원 및 연세의료원장 이철 장로
어쩌다 병원장이 됐다고 웃어보인 이철 전 연세의료원장은 “병원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셨다”고 고백한다.
어쩌다 병원장이 됐다고 웃어보인 이철 전 연세의료원장은 “병원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셨다”고 고백한다.

우리나라에서 연세의료원그중에서도 세브란스병원을 모르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내 최장수 종합병원인 이곳의 화려한 부흥기를 이끈 수장이 하나님과 동행한 크리스천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장본인인 전 세브란스병원장 및 연세의료원장 이철 장로(71·온누리교회)는 사실 평생을 환자 진료에만 매진했던 소아과 의사였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의료행정가로 부르심을 받아 14년간 헌신한 데는 견고한 신앙이 자리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지킨다는 사명을 갖고, 기독교병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시키고 활발한 나눔 사업을 펼친 이 장로는 1년 예산이 2조 원을 훌쩍 넘는 병원의 거대 살림을 성공적으로 꾸린 인물로도 정평이 나있다. 그럼에도 병원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셨다고 겸손히 고백하는 그에게서 단순히 환자들의 육체적 치료를 넘어 영혼까지도 치유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다.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든 사명
이 장로의 이력은 얼핏 들어도 무척 화려하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약 8년 동안은 세브란스병원 기획관리실장과 진료부원장, 그리고 연세의료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이후 2008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은 세브란스병원장과 연세의료원장을 수행했다. 특히 연세의료원의 경우 2020년 기준 1년 예산이 28,000억 원, 13개 산하기관에 직원 수는 12,538명에 이를 정도다. 여기에 전공의 921, 간호사 5,258명 등을 더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명성 있는 대형병원에서 무려 14년을 의료행정가로 살았으니, 이쯤 되면 이 장로가 처음부터 병원경영에 상당한 재능과 관심을 보였으리라 짐작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사실 그는 본래 소아과 의사로서 인큐베이터에서의 미숙아 신생아 집중치료를 도입한 1세대 신생아진료 세부전문의였다. 다시 말하면 병원 경영과 관련해선 ’(기역)자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던 셈이다.

병원 CEO로서의 욕심은 고사하고 전문의 시절 주위에서 발생하는 의료분쟁들로 끊임없이 골머리를 앓아야했던 이 장로는 오히려 의사가 자신의 길이 맞는지를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했다. 하지만 고비 때마다 그는 고린도전서 1013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는 말씀만 의지하며 주님께 나아갔다.

이와 함께 시편 1271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는 말씀은 흔들리던 그를 더욱 견고히 붙잡아줬다. “똑같은 치료를 해도 어떤 아이는 살고, 어떤 아이는 죽고. 또 어렵게 목숨을 건져도 누구는 후유증이 남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마주할 때 엄청난 회의감을 느꼈어요. 그런 저를 일으켜준 게 이 시편 구절이었습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이처럼 가랑비에 옷 젖듯 차근차근 믿음을 키워가던 그는 온누리교회 고() 하용조 목사를 통해 의사로서 확실한 소명의식을 세워나갔다. “하루는 온누리교회로부터 피택장로가 됐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일이 바빠 교회 봉사도 거의 못 했으니 자격이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죠. 그런데 하 목사님께서 교회사역에 부담을 느끼지 말라. 지금처럼 앞으로도 병원을 선교지로 여기고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하시는데 그 자리에서 순종이 되는 겁니다.”


기독교병원의 정체성 확립에 온힘
한편, 하나님은 수십 년 동안 의사의 사명을 다해온 이 장로에게 새 길을 열어주셨다. 40대 적잖은 나이가 무색하게 의료행정가로서 제2의 삶을 예비하신 것. 물론 세브란스병원 기획관리실장으로 시작할 당시 처음에는 결재할 때 1억 원이 눈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행정 초년병이었기에 염려도 됐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선교사가 세운 기관을 청지기의 심정으로 잘 맡아 하나님의 사랑을 직원들과 환자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소망이 샘솟았다.

대신 매 순간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다는 이 장로. 그 덕분에 특히 세브란스병원장과 연세의료원장 재임 기간에는 뛰어난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혁명에 가까운 변화들을 시도하고 성공시켰다. 우선, 2000년도 의약분업 때 그는 교수와 전공의 및 직원들 간 침체된 분위기를 살리고자 1회 세브란스 찬양 경연대회를 열었다. 이 장로는 모든 교직원이 화합하는 계기가 됐다찬양 중 예수님을 영접한 직원도 생기는 등 가슴 벅찬 기적들도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하나님 사랑이라는 기독교 정신위에 병원을 세우려는 노력은 파격적인 행보로 연결됐다. 일반적으로 병원 로비층에는 외래환자가 가장 많은 메이저 진료과를 배치하는 상식을 깨뜨리고, 과감히 편의점·커피숍 등 편의시설을 둔 것이다. 그는 환자의 니즈를 먼저 고려해 병원에 들어서면 알코올 소독약 냄새 대신 커피 향을 맡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동시에 기독교병원은 더 이상 낡고 구태의연한 곳이 아닌, 세련된 곳이란 인상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이 장로는 환자와 내원객들에게 새롭고 다양한 문화예술 전시를 제공하고자 화랑을 마련하고, 대부분 구원생명수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진열했다. 또한 병원 내 손 씻기 운동을 벌이기 위해 직접 연극까지 하면서 직원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무엇보다 이 장로는 수술 전 집도의가 환자를 위해 기도해주는 프로젝트를 펼치고, 수술실 천장 등 병원 곳곳에 성경 말씀을 붙여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해주고자 애썼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환자들은 마음속으로 내가 살아서 다시 나올 수 있을까?’란 걱정을 해요. 그래서 떠올린 게 기도였죠. 특히 힘들고 어려운 수술을 받는 환자일수록 마취준비실에서 전도사님 혹은 집도의들이 기도해주면 마음에 큰 힘을 얻거든요. 그리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오죽하면 스님이 기도를 부탁한 적도 있었고, 수술 후에도 환자들이 마음에 한결 안정과 위로를 얻으면서 통증을 경감해주는 마취제 사용량이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이철 장로가 수술 전 환자를 위해 의료진들과 함께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이철 장로가 수술 전 환자를 위해 의료진들과 함께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행복을 택하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직원들은 물론 환자들의 영혼까지 돌보겠다는 이 장로의 비전은 곧 나눔사업을 활발케 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가령 2002년 연세의료원은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는 교회들과 MOU를 맺었다. 선교사 본인을 비롯해 배우자와 자녀들을 대상으로 세브란스병원이 외래진료와 입원, 수술 등을 담당하고 50%의 진료비까지 지원키로 한 것이다. 이에 2019년 기준 361개 교회 및 선교사 950여 가정의 2,333명이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들의 후원으로 선한 사마리아인 SOS 프로젝트를 펼쳐 어려운 환자들을 돕는데도 앞장섰다. 2019년 누적 후원자 수는 개인과 교회를 포함해 34곳에 달한다. 그는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는 노숙환자 등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약제처방 등 기본적인 진료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그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귀한 존재로써 우리가 돌보는 것은 당연하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행복이 더 크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런가 하면 이 장로는 직접 세브란스 후원의 밤을 기획해 하룻저녁에 120억 원의 기부약정을 달성해낸 기염을 토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제가 전문 경영인도 아니고, 세브란스병원이 국립 혹은 기업의 소유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기댈 언덕은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것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볼 수밖엔 없어요. 제가 비록 원장이었을지라도 임기 내내 진짜 주인은 오로지 주님이셨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백은 하나님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 장로. 실제로 그가 행정 실무자와 책임자로 있던 시기 세브란스병원은 오로지 진료수입과 기부에 의지해 10만 평의 건축을 이뤘다. 나아가 국가고객만족도조사(NCSI)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지식경제부 주관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에서 장관상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환자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 공로를 인정 받아 국내 병원 중 최초로 국제 표준의료서비스 심사인 JCI 인증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정작 가장 보람을 느낀 때는 따로 있다. “한 번은 암으로 세브란스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투병하던 환자가 이곳에는 영혼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제게는 최고의 의료수준 등 그 어떤 칭찬보다도 훨씬 감동적인 말이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지키겠다는 철학이 확증된 것 같았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섬김의 리더십
물론 이 장로라고 그간 왜 힘듦이 없었을까. 조직의 수많은 일원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일은 늘 험난했다. 가령 병원 내 스피커로 찬양을 틀자는 겉보기엔 간단한 지침마저도 직원들을 설득시키는 데는 6개월이 걸렸다. 더욱이 역사가 오랜 기관일수록 관습에 익숙한 시니어 교수들에게는 작은 변화도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한 열쇠로 이 장로는 인생의 멘토였던 하용조 목사를 본받아 스스로 낮아지는 섬김을 택했다. 그 일환으로 2011년 연세대 의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수들이 학생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연 이 장로의 행보는 세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사실 이 같은 리더십은 하 목사님의 평신도 사역철학에서 배웠어요. 그 분의 살아생전 10년간 주치의를 담당하면서 어깨 너머로 진정한 협치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죠. 평신도가 제안한 사역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 그리고 이를 자신이 아닌 동료들의 공으로 돌리는 모습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한편, 은퇴 후 현재는 하나로의료재단 총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 장로는 최근 이러한 간증을 담은 책 세브란스 인사이드를 발간했다. 이를 통해 모든 영광은 주님께서 홀로 받으시길. 더불어 앞으로 나의 제자들도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의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는 그의 고백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2011년 연세대 의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수들이 학생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연 이 장로의 행보는 세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2011년 연세대 의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수들이 학생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연 이 장로의 행보는 세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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