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M가수로 인생 2막…백석대평생교육신학원에서 제자 양성에 온 힘
1981년 그룹 ‘시인과 촌장’으로 데뷔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아티스트이자 백석대평생교육신학원 실용음악과 학과장을 역임 중인 하덕규 교수가 최근 오랜 공백을 깨고 방송에 출연해 큰 화제를 모았다.
하 교수는 지난 10일 KBS 2TV 음악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을 통해 23년 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비쳤다.
그는 머릿속으로 피 흘리는 에수님의 형상을 그리며 단 10분 만에 만든 것으로 알려진 곡 ‘가시나무’를 비롯해 ‘사랑일기’ ‘풍경’ ‘한계령’ 등 숱한 명곡을 탄생시킨 80년대 대표 싱어송라이터다.
특히 아름답고 철학적인 노랫말과 따뜻한 멜로디로 ‘음유시인’으로 불리던 그는 감각적이면서 실험적인 곡으로 시대를 앞서갔다. 덕분에 훗날 내로라하는 수많은 뮤지션들은 하 교수를 인생의 멘토이자 은인으로 꼽는다.
이날 방송에는 포크계의 레전드로 불리는 박학기가 나서 ‘사랑일기’ 무대를 꾸몄다. 이 밖에도 유리상자는 ‘풍경’ 박기영은 ‘가시나무’ 정세운은 ‘좋은 나라’ 카더가든은 ‘고양이’를 각자 자신들만의 감성과 음색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이어 최종 우승을 차지한 신승태는 하 교수의 자작곡인 ‘한계령’을 우리 가락으로 재해석해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들은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명반의 가치를 인정 받은 하덕규 선배님 앞에 서니 가슴이 떨린다”면서 “꿈에 그리던 무대를 펼칠 수 있게 돼 감격스럽고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화답해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제 노래가 부족하지만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방송 출연을 결심했다”고 운을 뗀 하 교수는 각 노래들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함께 들려줬다.
그는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곡 ‘사랑일기’의 경우, 20대 때 화실을 경영하면서 친한 동생들과 밤새 기타 치며 노래하고 대화를 나눈 뒤 아침에 창문을 열었는데 유난히 아름다웠던 풍경에 세상 모든 걸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감흥이 들어서 10분 만에 쓴 곡”이라고 소개했다.
더불어 숨겨진 명곡 ‘고양이’에 대해서는 “사실, 인간에 대한 회의감과 실망감을 그린 풍자적인 노래”라며 “그 당시에는 정치적 혹은 사회 비판적 노래를 부르려면 풍자와 은유밖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시대적 배경이 나의 음악성을 더욱 높여줬다. 특히 ‘자연’은 중요한 음악적 소통의 창구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하 교수는 “이 자리에서 제가 만든 삶의 기록들을 다시 한 번 들으면서 오히려 힘을 얻고 돌아간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더 좋은 예술가가 탄생한다. 앞으로 후배 아티스트들의 명곡들이 이곳에 가득 울려 퍼지길 바란다”고 소회를 전했다.
한편, 하 교수는 28살 무렵 누나의 끈질긴 기도와 전도 끝에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대중음악계를 떠나 CCM가수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온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90년대 CCM앨범 ‘쉼’ ‘광야’ ‘집’ 등을 발표하고 여러 교회와 찬양집회 및 공연 등을 다니며 활발히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CBS라디오에서 ‘하덕규의 CCM 캠프’를 수년간 진행하면서 해외 CCM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등 대중에 기독교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친근감을 더하는데 기여했다.
2010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고, 전국 교회들을 돌마 담임목사를 도와 찬양예배를 디자인하는 ‘음악 목사’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감당했다.
아울러 2002년부터 2019년까지는 백석대학교 및 백석예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임했다. 이 기간 그는 ‘예배사역’ 관련 전공들을 개설, 예배현장에 필요한 인재들을 길러내는데 힘썼다. 그리고 학생들과는 해마다 비전트립을 통해 지역 작은 교회들에 ‘음악 교육봉사’를 펼쳐왔다.
올해는 4년제 학사과정인 백석대평생교육신학원 실용음악과로 거처를 옮겨 후학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하 교수는 얼마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중가요든 CCM이든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성경적 가치관을 담아낼 때 진정 세상에서 빛과 소금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신학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는 음악가들을 길러내는 게 꿈이다. 백석신학원을 통해 이 시대 ‘대안적인 음악가’를 만들어내는 게 나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