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옛날에 얽매이는 것은 어리석어… 오늘이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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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옛날에 얽매이는 것은 어리석어… 오늘이 소중해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1.04.13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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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전도서이야기 (14) -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전 7:10)

전도자의 독특한 화법을 생각하지 않고 “이것도 저것도 다 헛되다(헤벨)”는 말을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해석한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오독입니다. 모든 것이 헤벨이라는 그의 진단은 우리의 크고 작은 우상들을 버리고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라는 요구입니다. 전도서 7장은 바른 선택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주는 지혜로운 권고로 가득합니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1절) 향유는 고대 세계에서 신분과 부를 드러내주는 호사품이었으니, 이 격언은 “명성이 명품보다 소중하다”로 풀어써도 무방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이익과 양심을 놓고 고민하는 이에게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제일이다”고 부추기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만, 생각이 똑바른 사람이라면 무슨 소리냐, 기름으로 이름을 이길 수 없다고 꾸짖는 목소리를 내야 할 것입니다. 바른말 하는 친구와 스승이 곁에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며, 그런 이들을 찾기 어려운 세대는 저주받은 세대입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2절) 잔칫집보다 초상집을 더 즐길 사람이 있지는 않을 터이니 싫어도 그렇게 해서 인생의 정도를 택하라는 가르침입니다. 흥미롭게도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를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서” 혹은 “그것이 마땅히 할 바여서”라 하지 않고 “인생의 종착지가 그곳이기에”라고 푸는 것이 신선합니다. 살아 있을 때 죽음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지만 우매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으며(4절),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3절). 사실 초상집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죽음을 둘러싼 현실의 모습을 직면하는 것이 주는 부담감 때문입니다. 결혼식장에 가면 축하하고 덕담을 나누고 미래를 기대하는데 비해 장례식장에서는 조문하고 과거를 돌아보게 되니 농을 즐기고 웃기를 좋아하는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기피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의 웃음은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만큼밖에는 값어치가 없습니다. 시시한 농담과 노래로 여흥을 즐기는 이들은 어리석어서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소중한 줄을 모릅니다(5절).

지혜와 어리석음은 가치판단의 문제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보물은 놓치고도 무엇을 잃었는지 모릅니다. 탐욕을 부리고 뇌물을 챙기면서 흐뭇해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 자신의 판단력(명철)을 망가뜨리는 대가를 알지 못하는 바보입니다. 인내하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시키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어려움이 닥치면 견디지 못하니 무슨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결국 맡겨진 일을 시작하고 마치지 못하니 무능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7~8절). 과거에 매이는 행동을 다룬 10절은 어리석음에 관한 교훈들 중 백미라 할 만 합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10절) 옛날은 지나갔습니다. 그리워해도 오지 않습니다. 오늘이 못마땅해도 오늘은 아직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기대와 노력에 대가를 줍니다. 어찌해 봐도 바꿀 수 없는 옛날보다 오늘이 소중합니다. 애굽을 떠난 뒤 하나님께 불순종해 40년간 광야를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창곡 18번이 “애굽에 있었을 때가 좋았는데...”였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왜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지 대신 어떻게 오늘을 더 낫게 할지 묻는 이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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