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을 쏘는 발사대, 그것이 선교사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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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을 쏘는 발사대, 그것이 선교사의 역할입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1.03.31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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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단체 탐방기(5) - 동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뛰는 OMF선교회

모두가 해안에 머물러 있을 때였다. 미지의 땅인 내륙으로 가는 문을 선뜻 열고 가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젊은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내륙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해안에 있는 소수의 중국인이 아닌 내륙에서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다가갔다.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CIM)의 시작이었다.

이후 CIM은 중국에서 가장 활발한 선교단체로 활약했다. 1905년 허드슨 테일러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천 명에 가까운 선교사들이 활동하며 중국 선교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랬던 CIM은 이제 OMF라는 이름으로 중국을 넘어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과감하게 중국 내륙 선교의 문을 열었던 허드슨 테일러의 후예답게,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복음 들고 달려가는 OMF선교회. 지난 25OMF선교회 대표 공베드로 선교사를 만나 그들의 당찬 걸음을 엿볼 수 있었다.

OMF선교회 대표 공베드로 선교사.
OMF선교회 대표 공베드로 선교사.

 

동아시아를 주님께로

내륙 개척의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1900년 벌어진 의화단 사건으로 인해 58명의 CIM 선교사와 21명의 선교사 자녀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다. 하지만 순교의 씨앗은 커다란 열매로 자랐다. 1939년 한 해에만 약 10,000명이 세례를 받는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

종교를 배척했던 중국 공산당의 눈엣가시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국 공산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CIM 선교사들은 중국 밖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바다를 건너싱가포르로 본부를 옮긴 CIM‘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지금의 OMF선교회로 이름을 바꿨다. 중국에서 나오게 된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동시에 선교회의 사역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한국 OMF선교회가 시작된 것은 1980년부터다. 지난해 벌써 40주년을 맞았고 앞으로 5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풀 멤버로는 37, 파트너십까지 70명의 선교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사역하고 있다.

“OMF의 사역 대상은 동아시아인들이지만 지역은 동아시아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아프리카와 유럽, 미주지역까지 동아시아권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어떤 캄보디아인 청년은 캐나다에 유학을 갔다가 예수를 믿고 사역자로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OMF의 뿌리인 중국내지선교회를 설립한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 사역 당시 모습.
OMF의 뿌리인 중국내지선교회를 설립한 허드슨 테일러의 중국 사역 당시 모습.

 

현지인의, 현지인에 의한 교회

OMF 선교사들은 나라로는 18개국, 필드로는 19개 필드에 흩어져서 선교의 땀을 흘리고 있다. 필드의 숫자가 나라의 숫자보다 많은 이유는 ‘DRM’이라는 독특한 필드의 존재 때문이다. ‘Diaspora Returnee Ministries’로 풀이되는 DRM은 고향을 떠난 이주민이나 유학생들을 제자로 훈련시키고, 다시 본국에 돌아갔을 때 선교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세우는 사역이다.

“DRM 필드를 통해서든, 현지 사역자들을 통해서든 궁극적으로 성경적 토착교회를 세우는 것이 OMF의 사역 목표입니다. 선교사가 가서 단순히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을 제자 삼고 지도자를 세워 자

립적이고 토착적인 교회가 세워지도록 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돈으로 하는 선교프로젝트성 선교는 지양하고 현지인이 현지 문화에 맞는 교회를 일으키도록 돕습니다. 중국인처럼 옷을 입고 머리를 꾸몄던 허드슨 테일러처럼요.”

선교사는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잠시 주어진 사명에 따라 머물다가 현지인이 자라 리더십이 세워지면 언제라도 이양하고 나오는 것이 선교사의 역할이라는 것이 OMF선교회의 생각이다.

제가 캄보디아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영국인 선교사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선교사의 역할은 인공위성을 쏘는 발사대라고 하더군요. 인공위성이 궤도에 안착할 때까지 연료를 태우다 자리를 잡으면 조용히 사라지는 그런 존재인 것이죠. 선교사가 주도권을 너무 많이 잡으면 현지인이 현지교회를 세우고 건강하게 자리 잡는데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40주년을 맞아 모인 한국 OMF선교회.
지난해 40주년을 맞아 모인 한국 OMF선교회.

 

선교사들의 든든한 언덕

지난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많은 선교사들이 부득이 귀국해야만 했다. OMF선교회에도 예외는 없었다. 코로나 이전부터 전방개척 선교지에서 발생한 비자발적 철수까지, 의도치 않게 선교지를 떠나야 했던 선교사들에 대한 멤버케어가 오늘날의 과제가 됐다.

비자발적 철수를 당한 이들은 현장에서 겪은 긴장과 어려움이 많습니다. 너무 큰 긴장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기도 하죠. 전문성을 살려 한국에서 해당 문화권 이주민 사역을 이어가면 좋겠지만 후원교회들의 인정이 넘어야 할 산입니다. 선교회에서는 이들의 멤버 케어에 온 힘을 쏟는 한편, 3국으로 전문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꼼꼼한 멤버 케어는 OMF선교회의 자랑 중 하나다. 선교사 파송 단계부터 메디컬 승인, 필드 승인 등 철저한 훈련을 거치고, 파송 이후에도 세 달마다 한 번씩 팀 리더와 소통하며 상황을 체크한다. 필드마다 의료 선교사가 따로 있어 건강을 점검하고 선교지에서도 계속 교육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과정이 마련돼 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좋은 선교사로 자라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짜임새 있게 갖춰져 있는 것.

동남아인들이 세계로 흩어지고 있어요. 동남아인이 있는 그 어느 곳이든 교회가 세워지고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세워져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사역을 감당했으면 합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선교가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주고 선교 동원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단체가 되고 싶어요. 동아시아를 위한 밀알로 주님 앞에 심겨질 수 있도록 OMF선교회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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