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하는 아픔, 목사님이 저의 마음을 살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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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하는 아픔, 목사님이 저의 마음을 살려주셨습니다”
  • 이인창
  • 승인 2021.03.0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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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목회자 자녀(MK) 회복 돕는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

지하철 2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북촌 방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헌법재판소를 조금 지나자 청소년 문화체험공간 ‘오픈아이즈’ 건물이 금방 나타났다. 주변 주택과 상가보다 근래 지어진 하얀 건물인지 금방 눈에 들어온다. 아치형 문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김성중 교수가 반갑게 맞는다. 그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이자 이곳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에서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교수는 목사이면서 신학자이지만 기자에게는 청소년 사역자로 더 익숙하다. 청소년들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특히 목회자 자녀에 대한 애틋함이 얼마나 큰지는 단 5분만 대화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마침 이날은 줌(Zoom)을 이용해 목회자 자녀(MK)를 위한 온라인 캠프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구소를 찾아갔다. 새학기 시작을 앞둔 지난달 18일이다.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장 김성중 교수와 연구원들이 온라인으로 목회자 자녀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캠프를 위해 간식부터 게임도구, 설교자료까지 전국으로 미리 선물세트를 보내주었다. 

“‘쉼’, 아이들을 쉬게 해주려고요”
건물 지하 1층에서는 연구원들이 분주하게 온라인 캠프를 위한 장비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그토록 아이들이 좋아하는 캠프를 열지 못했지만, 작년 여름 한 차례 온라인 캠프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비교적 여유가 있다고 했다. 

사실은 며칠 전부터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었다. 온라인으로 캠프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위해 전국으로 선물 세트도 보내두었다. 약속된 캠프 시간이 되자 화면 속에 아이들이 한명씩 한명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장 멀리는 인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자녀도 입장했다. 어색하고 수줍어서 말도 못한 채 아이들은 화면만 바라본다. 

수학강사 출신의 연구원이 아이스 브레이크 시간의 문을 열고, 자기소개도 하고 농담도 하자 아이들 특유의 장난이 시작된다. 사춘기 또래는 여전히 어색하지만 마음은 누그러진 듯하다. 

“온라인 수련회가 복잡하면 피로도가 높기 때문에 ‘쉼’을 주제로 잡고 그냥 아이들을 쉬게 해주려고 합니다. 단순히 놀고 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내려놓아야 영적인 쉼이 되잖아요.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신나게 노는 것이고 온라인으로 잘 놀 수 있도록 충분히 연구해서 간식, 선물, 나눔 노트, 설교 요약자료, 게임도구까지 미리 보냈죠.”

온라인 캠프이지만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갖고, 캠프에 함께한 연구원들이 관리를 계속한다. 목회자 자녀들은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또 있다는 것이 반갑고, 그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평생 친구가 만들어지는 기회가 된다. 

건물 지하에 마련된 열린 스튜디오에서 비록 온라인으로 진행하지만 설렘과 흐뭇한 미소가 김 교수와 연구원들의 얼굴을 떠나지 않는다.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장 김성중 교수는 견딜 수 없는 감격으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캠프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의미 있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장 김성중 교수는 견딜 수 없는 감격으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캠프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의미 있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목회자 자녀의 아픔 안아주기
김성중 교수 역시 목회자의 자녀다. 그래서 목회자 자녀들이 갖는 아픔과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청소년기 신앙의 방황도 심하게 겪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해보겠다며 2천명 규모 청소년 신앙캠프에 혼자 참석했다가 뜨거운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다. 절대로 하기 싫다고 했던 목사의 길을 지금 걷고 있다. 

견딜 수 없는 감격으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캠프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의미 있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교수이면서도 제일 하고 싶었던 사역이 작은 교회와 농어촌 교회 목회자 자녀들을 만나고 섬기는 일이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을 만나서 ‘너희 아버지가 귀한 일을 하는 분’이라고 자존감을 세워주고 있습니다. 어느 친구가 에버랜드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더라구요. 우리 캠프를 열면 서울에서 맛있는 밥을 대접하고, 놀이공원에서 마음껏 뛰놀게 해주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 목회자 자녀들은 다른 친구들처럼 브랜드 옷을 입어보지 못해 상처를 입는다. 주중에도 집에서 늘 마주치는 아버지가 무능력해 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하나님께로 향하기도 하지만, 믿음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애증을 목회자 자녀들은 갖고 있다. 

소명을 받고 목회하는 아버지들도 무기력감과 스트레스, 좌절감, 패배감을 겪는다. 그렇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목회자 가정이 무척이나 많다. 이런 목회자 가정을 돕기 위해 2017년 김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시작한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는 지금까지 빛도 이름도 없이 이 사역을 해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2019년 여름에 개최됐던 목회자 자녀와 선교사 자녀를 위한 ‘행복 수련회’ 당시 모습.

아이들 스스로 마음 열도록 도와주기
“우리 캠프는 강사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쌍방향이고 상담형이어서 아이들은 속의 이야기를 스스로 끄집어내도록 합니다. 아이들을 VIP로 대접해주기 때문에 한번 온 아이들은 또 오고 싶어하죠. 잠자라고 하는 시간도 없고 밤새 신나게 놉니다.”

김 교수의 설명대로 시간마다 강사가 말씀을 전하거나, 저녁기도회나 취침시간이 정해져 있는 캠프가 아니다. 2박 3일 캠프를 열면 첫날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난다. 같은 생각을 가진 목회자 자녀들을 만나 다 털어놓으면 시원하니까 신나게 놀고 싶어한다. 착한 어린이 증후군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마음껏 발산하도록 마당이 만들어진다. 떠나가라 소리도 외치고 공놀이도 하고 게임도 한다. 

물론 예배와 주제강연도 있다. 상시 상담소도 운영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순수의 결정체 같은 청소년들은 헤어질 때는 울음바다를 만든다. 단 2박 3일 만에 변한 모습에 부모들은 신기해한다. 나중에 부모들 평가를 받아보면 아이들이 이곳 연구소 캠프만 다시 가려고 한다고 한다. 만족도가 좋기 때문이다. 

김성중 교수는 사진으로 찍어 가지고 다니는 쪽지 하나를 보여 주었다. 캠프를 마치면서 아이가 손에 쥐어주고 갔다는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목사님의 강의가 저의 마음을 살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교회 위해 어디든 달려갑니다”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가 목회자 자녀 캠프 사역으로 시작해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사실 그 외 하는 사역도 많다. 궁극적으로는 작은 교회를 살리고 가정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목회자와 사모님을 위한 부모 세미나, 자녀와 함께 참여하는 교육 세미나도, 목회자를 위한 스피치 세미나도 연다. 작은 교회를 위한 음향 세미나도 있다. 부모를 위한 캠프 사역도 전개한다. 물론 교단을 초월해서 사역은 이뤄진다. 

특히 ‘보이지 않는 도서관’ 사역은 무척 재미지다. 공부방을 운영하는 작은 교회들을 위한 인문학 프로젝트로, 신앙서적, 설교전집, 교육서적, 문학서적 등을 기증한다. 책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도 만들어준다. 교인 중 한명을 전문가로 세워주면 연구소와 협력해 독서 프로그램, 논술지도, 독후감 공모전을 만든다. 교회 반응이 너무나 좋다. 사실 기독교교육리더십연구소는 순수 연구소보다 사역단체에 가깝다. 여느 청소년 단체와는 차이가 있다. 캠프도 소규모다. 불러주지 않아도 농어촌 지역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캠프를 하면 할수록 적자다. 적자는 사비를 들이기도, 취지에 공감한 후원자들의 마음으로 메워가고 있다. 

김성중 교수는 제자들인 연구원들의 처우를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지만, 연구원들은 가장 보람된 사역을 한다며 열정이 컸다. 

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도환 전도사는 “5명 10명만 있어도 우리 연구원들은 갑니다. 한 영혼이라도 있는 곳에 가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합니다. 작은 교회를 살리기 위해 어디든 찾아가서, ‘없어도 하고 있어도 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했고 가족 같기 때문에 우리는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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