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 사상에 대비해 기독교의 진리를 변호한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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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주의 사상에 대비해 기독교의 진리를 변호한 신앙고백
  • 장종현 목사
  • 승인 2021.03.02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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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현 목사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강해(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전체 33장에 걸친 신앙고백의 초두에 성경에 대한 신앙고백을 우선해서 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규범으로 교회 전통에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부여하는 로마 가톨릭 사상과 맞섰던 교리 논쟁에서 온 정통주의 신학의 산물이면서, 당시 점점 일어나고 있던 합리주의 사상에 대비해 기독교의 진리를 변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3장에서 하나님의 예정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2장의 하나님과 삼위일체에 관한 신앙고백에 바로 이어 그것을 다룸으로써 창조와 섭리, 인간의 타락과 죄의 형벌, 구속의 언약 등에 관해 진술하는 장들보다 먼저 논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이것은 16세기 말부터 만연하기 시작한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의식한 때문이라 볼 수 있다.

7장은 언약사상을 다루고 있는데, 언약사상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전체를 구성하는 틀이라 할 수 있다.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구분하는 언약의 2중적 체계는 8장에서 중보자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는 물론이고 19장에서 율법에 관해 서술할 때도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10장부터 18장까지 구원의 여러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 중 특히 이신칭의에 대한 설명은 구원의 근거로 신앙의 행위를 함께 드는 로마 가톨릭의 트렌드 회의의 교리에 맞선 개혁자들의 입장을 잘 보여 준다.

미국의 장로교회는 1729년 그전에 수정 없이 사용하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일부 수정했다. 신대륙의 상황이 영국의 상황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1903년 미합중국장로교회(PCUSA)는 신앙고백의 몇 부분을 수정하고 34장 ‘성령에 관하여’와 35장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관하여’를 추가했다. 당시 교회가 앞선 다른 시대보다 복음전파와 선교에 관심을 더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성령의 역사를 필요로 하고, 또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에 성령과 그분이 하시는 사역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고백하게 된 것이다.

1907년 우리나라 장로교회 설립 당시 독노회는 선교 초기 상황을 고려해 12신조를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채택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서를 부수적 표준서로, 특히 소요리문답서를 교회문답서로 받았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미국연합장로교회의 1967년도 신앙고백이 미국은 물론 한국교회에도 신앙고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진리의 표준으로서의 총괄성을 강조하는 입장과 복음의 상황 적합성을 강조하는 입장이 대립되었을 때 한국의 보수 장로교회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교회의 신앙표준으로 추가 채택했다. 현재도 보수적인 장로교회들 헌법의 상당한 내용이 웨스트민스터 표준서들을 따르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모인 성직자들은 예배, 성직자 안수, 교회의 조직 형태, 징계의 규정, 신앙고백에 대한 의견을 의회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부수적인 일들도 감당해야 했다. 그 가운데 가장 긴급한 일은 신앙적 진리에 대해 비교적 무지한 성인들과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리문답을 만드는 일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이전의 교리문답
여기서 종교개혁 이후의 교리문답의 기원과 영국 내에서의 현황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을 때, 독일 사람들은 로마 가톨릭을 공격하는 개혁가들의 설교들을 열정적으로 귀담아 들었다. 그러나 설교를 듣고 인쇄물들을 읽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개혁사상에 대해 온전한 지식을 얻을 수 없었다. 개혁가들의 외침을 즐겨 듣는 시민들은 여전히 변덕스러운 구경꾼들에 불과했다. 개혁가들은 신자들의 무지를 깨우칠 수 있는 조직적인 교육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서 그 대안으로 교리문답서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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