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권력과 재물, 지식… 들꽃의 영광만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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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권력과 재물, 지식… 들꽃의 영광만도 못해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1.01.26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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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전도서이야기 -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전 1:18)

전도자에게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은 술이라도 걸치면 입버릇처럼 나오는 푸념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만물의 헛됨’은 그가 자신의 정직한 의문과 성실한 탐구 끝에 내린 결론이며, 세상 사람들이 이해만 한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엄정한 진리입니다. 자연의 정교함에서 반복을 읽고, 지나가 버린 세대를 기억해주지 않는 현세의 모습에서 자신의 존재 역시 오래지 않아 잊혀질 것을 깨달은 사람답게, 전도자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그것조차도 결국은 헛되다는 것을 설득하는 작업에 나섭니다. 그는 먼저 지식과 지혜를 논합니다. 지식이 힘이라는 것은 철학자의 선언이 필요 없는 상식입니다. 

지식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적을지 몰라도 지식의 가치는 누구나 인정하지요. 정보의 차원을 넘어 삶의 판단력, 분별력을 가리키는 지혜의 가치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현인이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꾸지 않을 사람이라도 현인의 말에는 귀를 기울여볼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극한까지 밀어붙여봐야 직성이 풀리는 전도자는 지혜의 추구가 어디까지 우릴 데려다주는지 사고실험을 계속합니다. 그가 택한 실험대상은 솔로몬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현인의 극대치가 솔로몬이기 때문입니다. 전무후무한 지혜를 하나님께 약속받은 사람으로(왕상 3:12~13) 예루살렘 왕이며 하늘 아래 모든 일을 연구했고, 모든 것을 경험해 본 사람입니다. 전도자는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습니다만 전도서 1~2장에 묘사된 저자의 활동과 업적을 보면 솔로몬을 떠올리지 않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 ‘솔로몬스러운’ 존재가 가졌을 생각과 느낌을 독자에게 이입시키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헛됨(헤벨)’의 자각이고 번뇌와 근심이라는 감정입니다.

전도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지혜에도 대가가 따른다. 지혜를 가진 이는 그 지혜를 사용해 만사를 궁리하고 연구하게 되니 이것이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이며(13절), 아무리 지혜로워도 그 지혜로도 바로잡을 수 없는 세상의 현실이 있으니(15절), 그 지혜로움이 결국은 마음에 번뇌를 가져다주고 근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18절). 전도자는 이미 던져주었던 ‘모든 것의 헛됨(헤벨)’을 언급하면서 이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바람을 잡으려는 짓’이라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14절)

지식과 지혜를 선망해보고, 그것을 얻는 희열을 조금이나마 맛본 사람이라면 전도자의 이 선언은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은 충격요법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확한 사실입니다. 역사 속 솔로몬의 지혜는 세상 누구보다 뛰어나 풀기 힘든 인간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었지만(왕상 3:27), 그 지혜가 솔로몬 자신의 야망을 다스리고 고뇌를 해결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처첩이 일천 명이라는 비현실적일 정도의 겹치기 정략결혼을 통해서라도 나라의 부를 쌓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 했던 솔로몬의 마음에 평강이 있었을까요. 그렇게 해서 권력과 재물을 축적했어도 들꽃 하나의 영광만도 못하다 하신 예수님 말씀의 뜻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전도자가 우리에게 그려주는 자화상을 보십시오. 그는 비할 데 없는 현인이었습니다. 그의 지혜는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지식을 총망라했습니다. 자신이 아는 세상 누구보다도 깊고 넓게 연구했고, 훌륭하고 뛰어난 일들만이 아니라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망라해 만물을 탐구했습니다(17절). 그러나 슬프게도 그 끝은 번뇌와 근심이었습니다. 지식과 지혜를 삶의 목표로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실망하게 된다니 우리는 무엇을 좇아야 ‘모든 것이 헛되다’를 넘어서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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