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처럼 찾아올 통일을 위해 준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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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처럼 찾아올 통일을 위해 준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 이석훈
  • 승인 2021.02.0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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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삶 - 탈북민들의 삶 돌보며 통일 위해 기도하는 최기식 변호사

20년 검사직 내려놓고 법무법인 산지 파트너변호사로 새 일 도전

11월 3일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취임

일심회 사건·폭스바겐 사건 등으로 유명세…새벽기도로 하루 시작

20여년의 검사 시절을 마감하고 산지 법인의 변호사로 새 일을 시작하면서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을 맡아 통일사역에도 앞장서고 있는 최기식 집사.
20여년의 검사 시절을 마감하고 산지 법인의 변호사로 새 일을 시작하면서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을 맡아 통일사역에도 앞장서고 있는 최기식 집사.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통일이지만 분명히 어느 날 갑자기 쓰나미처럼 찾아올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때 당황하지 않고 준비된 통일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노아의 방주와 같은 배를 만들어 놓는 것이 저의 남은 생애 소망입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새로운 자리에서도 저를 인도하심을 믿고 주어진 소명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3일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으로 취임한 최기식 변호사(법무법인 산지, 과천교회 집사). 최 집사는 법무부에서 통일법무과장과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을 역임하며 검찰 내 대표적인 ‘북한·통일’ 전문가로 꼽히던 인물로 특히 어려운 탈북민들의 삶을 돌아보며 통일을 꿈꾸는 가운데 매일 새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버지 소원으로 검사의 길에

경남 밀양 소작농 가정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최 집사는 고1 봄날, 학교 앞 월 12,000원짜리 자취방에 셋째형이 두고 간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을 읽고 사법시험을 통해 입신양명을 꿈꾸었다. 1차 시험을 연거푸 4번 떨어지고 군입대 때문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5번째 1차 시험을 앞두고 매형의 갑작스러운 죽음, 둘째 형님의 경운기 교통사고, 시험 1주일 전 여자친구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받은 이별 통보 등 그날부터 불면의 밤을 보냈다. 하늘에 ‘시험만 보게 해 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며 응시한 1차 시험에서 기적적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2차까지 합격하여 법조인이 됐다.

이 사건은 입신양명을 꿈꾸던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으며, 하늘의 선물인 법조인 자격으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던 그에게 하늘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법조인’의 사명을 부여해 주었다.

군법무관 3년차, 아버지로부터 “내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18살에 할아버지 대신해서 일본에 강제징용을 다녀왔고, 할부지한테 받은 밭 70평으로 너그 6남매 키웠다. 형과 누나들은 초등학교 졸업하고 철공소로, 식모로 나가 너 공부를 시켰는데, 니가 고시에 합격했으니 나도 면서기들한테 자판기 커피 한잔 얻어먹고 싶다. 그랄라카믄 니가 판검사는 되어야 안되나?”라는 말씀을 듣고, 통일부 등 정책부서를 찾던 그는 ‘법무부 통일법무과 검사, 과장으로 일하면 되겠다. 사랑과 정의를 겸비한 검사, 화해케 하는 검사가 되자’며 아버지, 어머니가 자랑스러워하는 검사의 직으로 나아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교회에 나간 최 집사는 부모의 다툼이 심한 날이면 어김없이 교회로 가서 마음껏 울었다. 어린 마음에 공부를 잘하면 부모님이 덜 싸울 것 같아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교회를 다닌 것이 오늘날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건 중 결혼 후 세 아들 얻어

이렇게 검사생활을 시작한 최 집사는 일심회 간첩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았다. 그는 “진술을 거부하던 총책과 가족들을 위해 서울중앙지검 지하주차장 안에서 기도했었다”며 “면회 온 노모를 위해 차를 타 드리고 배웅해드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해당 총책은 검찰에 송치된 지 10일 만에 결국 사건의 전모에 대해 자백했다고 한다.

그는 돈 문제로 원수가 돼버린 친구들의 사건을 다루면서 보람을 느꼈다고도 했다.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불러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위로해 주었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화해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2016년 폭스바겐 배출가스 및 인증서류 위조사건, 2018년 이재명 경기지사, 은수미 성남시장사건 등 많은 담당사건들이 주목을 받았으며, 최 집사는 감당했던 모든 사건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

최 집사는 검찰에 와서 복을 참 많이 받았다고 고백한다. 법무관 3년차에 아내(한국화가 윤영경)와 결혼하여 검찰에서 세 아들을 얻었다. 서부지청 초임 때 낳은 큰 아들은 벌써 대학생이 됐고, 둘째는 중2, 막내는 초6이 됐다. 소원했던 독일에서 연수로 1년, 법무협력관으로 2년을 살면서 통일된 독일을 실컷 배웠다. 이후 법무부 통일법무과장,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 등을 거치며 통일과 북한에 대한 전문성을 쌓을 수 있었다.

최기식 집사는 법무관 3년차에 미술을 전공한 아내랑 결혼하여 세 아들을 얻어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 가족들이 아내인 윤영경 화가의 전시작품 앞에서 함께 했다.
최기식 집사는 법무관 3년차에 미술을 전공한 아내랑 결혼하여 세 아들을 얻어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 가족들이 아내인 윤영경 화가의 전시작품 앞에서 함께 했다.

특히 통일법무과장 시절 개성공단상사중재위원회 남측대표가 되어 북측 5인과 개성공단에서 회담하던 장면, 통일과 법률아카데미를 만들어 젊은 법조인들을 통일전문가로 양성하던 기억,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 기록으로 만났던 북한인권 실상은 잊지 못할 일이다.

 

법무법인 산지에서 새 길 시작

퇴직 후에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 북한인권을 지향하는 작은 법무법인 ‘산지’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파트너 변호사로 일하면서 이 땅에 와 있는, 그리고 중국 등 제3국에서 유리하는 탈북민의 삶을 보듬는다는 생각이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이 땅에 와 있는 그리고 중국 등 제3국에서 유리하는 탈북민들의 삶을 보듬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열정과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 학자들과 함께 통일이 쓰나미처럼 다가온다 할지라도 충분히 항해할 수 있는 크고 튼튼한 방주를 짓고 싶다는 것. 마치 방주를 만든 노아처럼, 이집트의 7년 대기근을 준비한 요셉처럼. 그래서 남북한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열강 가운데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런 자랑스럽고 부강한 통일대한민국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다.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으로 취임한 최기식 집사는 민간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역할에 대해 “현재처럼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때 민간에서 조사한 자료로 백서를 만들고 국제 인권단체에도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을 알려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돕도록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최 집사는 검사 시절 썼던 명함 뒷면에 백두산 천지 그림과 함께 성경구절을 넣어 떳떳하게 기독교인임을 밝혔다.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으로 둘이 하나가 되리라”(겔 37:17) 통일에 대한 말씀을 늘 되새기고 있다.

매일 새벽 아내와 함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최기식 집사는 생명이 다하는 날 “하늘아버지, 저 열심히 살았지요? 제게 주신 통일한국의 꿈 다 이루고 이제 아버지 곁으로 갑니다. 사명을 주시고 사명을 따라 너무도 행복하고, 보람찬 생을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백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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