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명성도 오래가지 않는, 인생의 ‘덧없음’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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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명성도 오래가지 않는, 인생의 ‘덧없음’ 비유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1.01.19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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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전도서이야기 -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말로 다할 수 없다”(전 1:8)

해 아래에서 사람이 하는 수고가 무슨 유익을 주는가? 덧없는 인생에 값진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 전도자는 독자들이 그 답을 찾도록 안내합니다. 사람들이 과평가하는 것들을 향해 질문을 던져 새롭게 보게 하는 것이 그의 특기인 듯합니다. 전도자는 먼저 자연의 규칙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봅니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1:5) 해가 뜨고 집니다. 하루가 지나갑니다. 사람은 잠들고, 다음날 깹니다. 다시 해가 뜨고 해가 집니다. 바람이 붑니다. 남풍이 불면 북풍도 오기 마련입니다. 동으로 서로 휘돌며 불던 바람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는 것을 보며 전도자는 바람이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강줄기가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법이 없고 강물이 멈춰서는 일도 없습니다. 전도자는 바닷물이 증발하고 수증기가 응축되어 빗방울을 이루고 다시 땅을 찾아 내려오는 순환과정을 직관하지만 그것을 피곤함이라 부릅니다(1:8). 자연현상은 반복될 뿐 새롭다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놀라워할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1:9~10). 창조주를 믿은 이스라엘의 지혜자가 자연의 섭리 앞에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 충격적인 일입니다. 시편을 남긴 시인들이라면 똑같은 현상 앞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지혜를 찬양했을 터입니다.

시편 19편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시 19:4b~6). 같은 해를 보고 무한한 공간에 그 해가 다닐 길(course)을 준비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이 우리가 성경의 저자에게서 기대하는 반응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의 스승으로 수많은 잠언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스승이(12:9) 피조세계를 향해 이처럼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 괴팍한 성격이나 창조주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세상사에 대해 말끔한 설명을 제시하는 대신 종종 “이단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역설과 반어법을 구사하는 것이 전도자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현상의 반복을 피곤하다 말하고,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선언하는 전도자의 의도는 그에 이어지는 역사와 기억의 문제를 생각해야만 실마리가 풀립니다. 내가, 우리 세대가 무언가를 이뤘다고 흥분하기 전에, 이전 세대들은 위대한 일을 하지 않았던가라고 물어보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앞서간 모든 세대는 자신들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진보한 세상을 살고 있으며 자신들이 그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정은커녕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자는 냉철한 논리를 폅니다. 우리 역시 후대가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참, 덧없다(헤벨)! 전도자는 다시금 깨닫고 그것을 독자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을 조금 바꾸어 자랑 없는 무덤 없다고 말하면 적절할지요. 나름 한 가락씩 하던 분들, 잘 나가던 분들, 수많은 이들이 애도하던 분들을 가릴 것 없이 인생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예외 없이 잊히고 맙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한 세대를 호령한 인물들도 금세 잊히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전도자는 우리에게 보배로운 향수(기름)보다 좋은 평가(이름)가 더 값지다는 격언을 주었지만(7:1), 그 어떤 명성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가슴에 새기라고 말해줍니다. 찰나를 사는 인생의 덧없음을 진심으로 이해한 사람만이 그 인생을 뜻있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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