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두려움 뚫고…선교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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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두려움 뚫고…선교는 계속됩니다”
  • 오종범 목사
  • 승인 2020.11.04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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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에서 오종범 목사가 보내온 선교지 편지

사경을 헤매는 동료 옆에서

가장 가까이서 코로나 상황 중에도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요셉님이 2020103일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지금까지 매일 같이 산에 오르며 기도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던 이웃 동지다.

3일전 지방도시 달라스에 현지인 동역자와 함께 승용차로 다녀온 후에 생긴 일이다. 열이 나고 몸살기운이 있다며 아파하였다. 이미 현지인 사역자는 코로나 확진을 받았고 나의 동료 요셉님은 음성이라 하여 안심하던 차였는데 병리 검사소에서 다시 양성이라는 소식을 전해 온 것이다.

양성 확진이라고 하여 병원에서 어떤 조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통보한 것으로 끝이다. 지금부터 치료는 환자 자신의 몫이다. 지난 7월 한모 동료께서 코로나로 하나님 나라의 부름을 받았던 일이 있어 또 이런 상황이 일어날까 초긴장이다. 한국인 동역자 의사가 시무하는 엘딕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병세는 더욱 확장되는 모습이다. 이미 폐렴으로 진행되어 폐 전체로 번졌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아내 최 사모님께도 이상이 왔다. 전신이 아프기 시작하고 열이 올랐다. 서둘러 사모와 함께 나도 검사를 받았다. 당일에 인터넷으로 통보된 검사 결과는 나도 사모님도 음성이었다.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틀 후 검사소에서 최 사모님이 양성이라고 정정 통보를 해 온 것이다.

이후 요셉 부부가 병원을 왕래하며 치료를 받았으나 병세는 호전이 되지 않고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호흡이 곤란해지고 산소포화도가 80까지 떨어지며 기침도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극심했다. 앞서간 한 선교사의 길을 가는 것 같아 심히 걱정이 되었다.

마침 터키에서 세운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3일이 지나도록 병세의 호전은커녕 산소발생기 두 대를 한 사람이 사용해도 산소포화도는 올라가질 않았다.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이들 부부를 그냥 데려가지 마옵소서! 좀 더 이곳에서 일하게 하옵소서! 이미 30년을 일했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더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이 감당해야 할 주님의 일이 있습니다!”

다시 키르기스스탄의 국립 병원에 이송을 하여 치료를 받게 되었다. 침례의 동역자들은 교단 선교부에 이 상황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1015일 침례교 교단 선교본부에서는 요셉 부부를 에어 앰뷸런스를 이용, 한국으로 이송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침례교단의 통큰 결단에 경의를 표하며 두 동역자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회복의 길이 열림에 기쁨을 감출 길이 없다. 이들 부부는 1018일 밤 에어 앰뷸런스를 타고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 교계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신속히 치료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이 나라의 인구가 올해 기준으로 630만 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1024일 현재의 이곳 코로나 바이러스 현황은 한참 번성하던 지난 7월 하루에 1천 명에 육박하는 확진자가 발생하다가 89월 그 수가 50여 명까지 줄어들었으나 10월 들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어제는 606명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한 주간 이상 매일 500명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오늘까지 총 확진자는 55,750, 사망자는 한국인 두 사람 포함 1,134명이다.

지난 6,7월을 지나며 일간 1,000명에 이르는 확진자가 생기는 바이러스 확장기간이 있었다. 인구에 비해 엄청 많은 숫자였다. 이 때 한국인들은 여섯 번에 걸쳐 전세 비행기를 이용 한국에 들어갔다. 한인 사회가 텅 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그 때에는 아파트 단지에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여기는 사람이 죽으면 곡소리를 크게 하며 슬픔을 표현한다. 이 때 한국인 사역자들도 20여명이상이 확진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이때 56세의 동료가 순교자의 길을 갔다.

확진을 받던 날까지 대학에서 온 라인으로 강의를 하며 한국어 학원을 세우고 그곳에서도 강의를 했다. 이 나라에서 지금 까지 천백명 이상이 코로나로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의 영정 앞에서 예배를 집례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눈물로 시작하여 눈물로 끝이 났다. 분명한 것은 죽음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다. 그냥 울었다. 이게 예수님의 안타까움인가 하는 마음을 가져 보았다.

코로나 19 확진을 받은 우리 동료 환우들은 죽음을 각오하며 자가 치료에 전념을 했다. 이때 치료방법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정보에 따른 약을 열심히 복용하는 일이었고 스스로 면역력에 좋다는 음식을 구해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병원이 있어 위로처가 되기는 했지만 그 병원에는 검사시설이 없고 진단 키트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의사 선교사는 환자의 증상만을 보고 확진 여부를 판정하고 있다. 이 열악한 상황에서 동료들이 의지 할 곳은 우리들의 협의회다. 협의회 에서는 위기 관리팀을 발동하여 약품을 나누고, 식사를 나누며, 산소 발생기 등 필요한 의료기구를 구입하여 위급한 환우들에게 제공하며 또 이동수단을 제공하는 등의 역할로 위기를 극복 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방도시 오쉬에서 침술사역을 하시는 동료는 환자들을 돌보고 이동시키는 일을 감당하며 그 위기 가운데서도 자기 건강을 생각지 않고 주야로 뛰는 모습을 전해 오곤 했다. 수도에서나 오쉬에서나 산소발생기를 들고 뛰어 다니는 일을 한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사역자들은 각자 이웃들에게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나누고, 코로나로 고통을 당하는 현지 사역자들을 돕는 일도 계속해야 하는 일이었다.

전염병을 두려워 숨거나 피하지 않고 이웃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다지는 귀한 기회로 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지인 사역자들도 함께 물질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열심을 다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일들을 위해 조국의 교회와 성도들의 다양한 후원과 기도는 이일들을 해 낼 수 있는 기반이자 힘이 되었다. 협의회 위기 관리팀 운영을 위한 후원금과 약품, 그리고 여러 가지 물품들을 보내 주셔서 서로 잘 나눌 수 있다. 또한 키르기스 한인회에서도 교민들의 안전을 위한 여러 조치들을 하며 생활이 어려운 교민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국경이 통제되고 항공로선이 모두 취소되는 고립사태와 마트와 음식점 모두가 문을 닫아버리는 초유의 사태에 교민들은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한동안 해야 했다. 그런 중에 숨통이 트였던 것은 특별항공편이 월1회 운행이 되었다. 이를 이용하여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다행중의 다행이었다.

이곳의 백석 식구들은 총 여섯 가정이다. 이중 한 가정은 질병 치료차 한국에 나갔다가 갇혀 버렸다. 이미 치료가 끝났지만 한동안 입국이 거절 되었고 개방이 된 지금 이제는 항공편이 없다. 이 가정을 제외 하고는 모두 임지를 지키며 어려움에 처한 이곳 교우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이곳의 교우들의 삶의 형편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병원에 한번 가보기도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우리 교회만 해도 목사를 제외한 모든 교우들이 코로나에 감염 되었다가 치료가 되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러나 병원에 가서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모두 스스로 약을 사서 복용을 하고 좋다고 하는 비법들을 동원하여 치료하였다는 체험담을 말하곤 한다.

70대의 에직 집사는 코로나로 양쪽 폐가 모두 까맣게 되었다. 그는 개기름 500그람을 먹고 의사도 깜짝 놀랄 만큼 신속하게 치료가 되었노라고 하면서, 한국인들에게 개기름을 먹이라고 나를 다그친다. 조금 전에도 한 시간이 넘도록 날 설득하여 굴복시키고 말았다.

이와 같이 교우들의 말을 들어주고 이들에게 생활에나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사랑하는 현지 교우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들은 감동스럽기 까지 하다. 공개된 지면이라 상세한 기술을 할 수 없지만 장례를 집례하고 구호금을 전달하며 의약품을 구매하여 치료를 지원해 주는 눈물겨운 사연들을 연출하고 있다. 내일도 딸이 사망한 현지 목사 두 가정을 심방하기로 했다. 코로나 관계로 장례식에 원래 4명 이상 가지 말라고 권한다. 그래서 장례를 마치고 찾아 가기로 했다.

고국에서도 어려움은 마찬 가지일 것이다. 제대로 예배모임을 가질 수 없는 형편이 같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재정적으로도 아주 힘든 시기임을 이해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 총회와 위원회 그리고, 총회장님과 총회원 여러분들 그리고, 임인기 위원장님의 헌신으로 단비 같은 후원금을 받을 수 있었음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부원 모두가 사랑의 후원을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고국의 동역자 여러분과 교우 여러분! 사랑하고 존경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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