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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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 장원기 목사
  • 승인 2020.10.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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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기 목사/흥광교회

히브리서 10:25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그리하자”라고 했듯이, 시대의 마지막인 그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자가 없어서, 이는 신(信)·불신(不信)을 막론한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말씀대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습관과 같이 하지 말아야 함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명령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2020년 8월 이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하자 대통령은 특정 교회와 목사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면서 “방역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세력에게 공권력이 살아 있음을 보여 주라.” 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이 전국 교회의 대면 예배를 금지시키고 정부와 여당이 교회를 비판하고 언론들까지 이를 집중 보도하며 교회가 마치 코로나 확산의 주범인양 종교의 자유, 직업 활동 등의 자유를 통제하는 등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매우 폭 넓게 제한하고 있다.

종교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와 올바른 삶에 대한 답을 추구한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는 인권 보장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기본권이다. 그러므로 신앙과 신앙고백의 자유, 종교 집회의 자유가 제한될 수 없음은 법이 정한 바이다. 물론 정부의 방역 수칙을 어긴 교회가 있으면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특정 교회의 잘못을 기독교 전체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예를 들면 특정 음식점이나 찻집, 또는 영화관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모든 음식점, 찻집, 영화관의 영업을 중단하지 않는다. 방역 수칙을 잘 지키는 대부분의 교회까지 대면 예배를 금지시키는 것은 책임 원칙에도 위배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9개월이 넘도록 단 한번도 교회를 나오지 않는 성도가 급증하는 등의 어려움은 언급조차 할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의 본질인 예배가 무너진 것이다. 예배는 교회의 본질이며 하나님과 성도를 연결해주는 생명줄과 같다. 우리의 신앙 고백에도 성도의 교제가 잘 이루어져야 함을 고백하는데, 비대면 예배로 성도의 교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히브리서 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은 모이지 않으면 성도와 교회가 제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려질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는데, 물론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성도들도 있겠지만, 혹 잠옷 바람에, 그리고 차를 마시며, 또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잡담 등을 하며 드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니 그것은 온전한 예배일 수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가 예배를 멀리하고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소홀해지는 것이 되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70~80년대의 뜨거운 예배의 열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 되었다. 그 결과로 국가의 흥망성쇠와 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번영을 주셨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 축복을 주셨다. 그렇잖아도 자꾸만 신앙이 형식화, 세속화 되어가서 이구동성으로 걱정했는데, 이제는 코로나 재앙으로 예배를 멀리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하나님은 뒷전에 두고 모이기를 폐하는 이 상황은 결국 성도들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시편 84:3에 보면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나이다”라고 했고 4~5절에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다. 우리 모두 주의 전에 모여서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 시온의 대로가 열리는 복을 누리기를 바라고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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