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 이내 무조건 가능, “여성 자기결정권” VS “태아는 엄연한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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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주 이내 무조건 가능, “여성 자기결정권” VS “태아는 엄연한 생명”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0.10.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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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법무부 등 형법·모자보건법 입법예고
24주 이내 허용 요건, 사회경제적 이유 추가돼

임신 주수 낙태 기준, 찬반단체 모두 부정적
“태아와 여성 모두 보호할 방안 찾고자 해야”

정부가 지난 6일 임신 14주까지 낙태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겠다고 밝혔다. 소식이 전해지자 사후피임약, 임신테스트기를 제조 판매하는 업체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낙태 요건을 완화하고, 약물로도 피임이 가능하도록 하면서, 관련 제품의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수요 예측 때문이다. 한 생명의 여탈이 달린 낙태 문제를 바라보는 냉혹한 세상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정부 개정안을 두고 낙태찬반단체들은 모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정부가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지만 낙태 찬반단체 양쪽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지만 낙태 찬반단체 양쪽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낙태 요건, 14주와 24주 차등규정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예고대로 하루 뒤인 지난 7일 법률개정안 내용을 공개하고 국민들의 의견수렴 절차에 돌입했다. 정부 개정안이 발표되자, 내용을 두고 낙태죄 반대 단체도, 찬성 단체도 반발했다. 

정부가 낙태죄 관련 입법개선 절차에 착수한 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처벌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때문이다. 헌재는 올해 12월 31일까지 낙태죄를 개선하도록 주문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하여 낙태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전면적·일률적으로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하여 낙태한 경우 형사처벌 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헌재는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면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며 단순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보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헌재의 이런 지적 때문에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 낙태의 허용요건 조항을 신설했다. 형법과 모자보건법으로 이원화 되어 있는 처벌과 허용 규정도 일원화 했다. 바로 임신한 여성의 임신유지·출산 여부에 관한 결정 가능기간을 임신 24주 이내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임신 14주·24주로 구분해 허용 요건을 차등 규정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임신 14주 이내에서는 절차 요건 없이 임신 여성 본인이 낙태를 결정할 수 있다. 임신 15~24주 이내는 현행법에서 정하고 있는 기준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도록 했다. 모자보건법은 이미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실체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근친관계 간 임신, 임부 건강 위험 등이 있을 경우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사회 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하려는 경우 상담과 24시간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했으며, 낙태 시술자는 현재처럼 의사로 한정했다. 자연유산을 유도하는 약물을 허용해 시술방법 선택권을 확대한 것, 의사가 개인의 신념에 따라 낙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눈에 띈다.

법안은 입법예고 기간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자기결정권 침해, 전면 폐지해야”
정부는 입법예고를 하면서,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실제적 조화를 이루도록 법 조항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조화될 수 있는 것일까. 개정안은 낙태가능 주수로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동의하는 의견을 찾기는 어려웠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들은 역사적 ‘퇴행’이라고 단정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절대적으로 침해하는 낙태죄는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사실상 낙태죄 폐지를 결정한 헌재의 판결을 뒤집은 ‘위헌적 개정안’이라는 주장도 정치권 등에서 나오고 있다. 여당 일부 의원, 또 정의당은 당 차원에서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낙태죄를 완전히 배제하겠다고 벼르고 나섰다. 

법사위 소속의 박주민 의원은 “법무부 개정안은 낙태죄를 오히려 공고히 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낙태죄 조항을 그대로 두고, 허용요건 조항만 추가했기 때문”이라며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 인공임신 중단의 절차와 요건 등은 보건의 관점에서 접근하도록 관련 조항을 개정해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지난 8일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허용 요건을 제시했다고 하나, 처벌이 전제돼 여성의 건강권과 평등권,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됐다”면서 “합법과 불법을 임의적인 주수 기준으로 구분한 것은 과학적 근거도 없고, 법의 명확성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환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의료행위 거부는 허용돼선 안 된다. 의료인이 거부할 경우 산부인과 지역별 격차도 큰 상태에서 여성들은 의료기관과 상담기관을 전전해야 한다”면서 “임신중지를 필수 의료행위로서 공공의료 영역에서 보장하는 법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태아는 독립된 인간, 존중받을 대상”
반면 정부 개정안에 반대하는 전국 174인의 여자 교수들은 성명서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완전히 무시한 이번 낙태죄 개정안은 태아 살인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것과 다름없을 뿐 아니라 여성의 건강 보호와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 인식을 같이 한다”면서 “태아의 생명을 임신 주수로 임의로 제한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반발했다. 

태아생명보호시민연대는 “태아는 독립적인 한 인간이고 독립된 것으로 생사를 결정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엄연한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존중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우리 사회는 인권존중 사회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며 “하나의 시기를 기준점으로 삼아 낙태를 허용하려는 모든 시도를 강력히 반대하고, 여성과 태아 모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법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대다수 기독교와 천주교 등 종교계는 일찌감치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면서,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불교계는 제대로 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번 개정안이 나오자 한국교회총연합은 “인간의 자기결정권은 자신 혹은 타인의 생명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허용돼야 하고, 임신으로 생성된 태아는 어머니의 보호 아래 있다 하더라도 별개의 생명체로 존중돼야 한다”면서 “국회는 입법 논의 과정에서 생명존중의 원칙을 분명히 해 신중하게 결정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앞서 8월 성명을 발표하고 “여성의 행복과 자기결정권이 태아 생명권보다 앞설 수 없다. 헌재도 태아의 생명보호를 공익으로 인정했고,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법적 공백으로 간주했다. 그런데도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한다면 국가 책무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편,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은 “낙태 허용 시기는 임신 10주, 70일:초음파 검사 상 태아 크기로 측정한 임신 일수 미만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약물낙태 도입 여부도 국내 임상 시험 후 신중한 검토를 요한다”고 제안했다. 

12월 31일까지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논란이 예상된다. 이미 청와대와 국회 홈페이지에 청원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신앙적 기준에서 태아의 생명권은 타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교회의 하나된 목소리와 실천이 필요한 때가 됐다. 또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이토록 강조되는 것은 그만큼 여성에게만 출산의 책임을 강요하고 범죄자로만 바라본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인식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임신의 또 다른 주체인 남성의 무책임을 차단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될 필요가 있다. 

행동하는프로라이프 공동대표 박상은 원장(안양샘병원)은 “자기결정권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태아의 소중한 생명권을 고려하고 임신의 자기결정에 책임도 져야 한다”면서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면서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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