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편견 허문 자폐인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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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편견 허문 자폐인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가요”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0.09.28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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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의 미술적 재능 꽃피우는 ‘오티스타’
오티스타의 오프라인 매장에는 알록달록 예쁜 디자인의 텀블러 등 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오티스타의 오프라인 매장에는 알록달록 예쁜 디자인의 텀블러 등 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서울 신촌의 한 매장. 이곳에 발을 들이자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조명 아래로 에코백과 머그잔, 문구류 등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돼 눈길을 끌었다. 특히 기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각 제품에 새겨진 아기자기한 디자인이었다. 그림 속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노란색 코끼리와 마주하자니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며 찬찬히 매장을 둘러보는데 이번에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Love God, Love Society.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의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편집숍 같지만 사실 이곳은 자폐인들의 남다른 재능이 꽃을 피우는 사회적기업 오티스타’(Autistar)의 오프라인 스토어다. 오티스타는 미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폐인들의 디자인을 상품으로 제작해 판매하고, 수익금은 다시 자폐인들의 독립을 위해 사용한다. 에베소서 210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는 말씀을 따라, 세상의 편견에 맞서 장애인들의 활발한 사회참여를 돕는 오티스타를 직접 찾아가봤다.

오티스타 이소현 대표
오티스타 이소현 대표

자폐인의 특별한 능력
오티스타(Autistar)‘Autism Special Talant And Rehabilitation’의 줄임말로, 자폐인의 특별한 재능을 통한 재활을 의미한다. 오티스타가 처음 생겨난 때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해로 27년째 이화여자대학에서 특수교육을 가르치고 있는 이소현 교수는 당시 자폐관련 연구나 실질적인 지원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한국의 실정에 크게 안타까워했다. 이에 조기 발견과 교육을 통해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복지와 지원 모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직접 오티스타를 설립했다.

그렇다면 이 대표는 어떻게 장애인들을 섬기게 됐을까. 이 질문에 그는 고등학교 시절 중증장애인들을 만난 경험을 털어놨다. “학교에서 어린이병원으로 봉사활동을 갔어요. 그런데 보육원 등 일반 시설에도 가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장애를 지닌 어린이들이 빼곡히 누워있는 거예요. 몇몇 아이들이 의사에게 우리는 언제 학교에 갈 수 있느냐고 묻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길로 집에 돌아온 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특수교육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죠.”

이후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며 목표를 이룬 이 대표는 특히 자폐인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자폐인들이 그저 예뻐 보였다는 그는 이 또한 하나님이 부어주신 마음이자 소명이라고 믿었다. 학업을 마친 뒤 대학 강단에 서면서도 자나 깨나 자폐인들이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 녹아들 수 있을까’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게 할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 대표는 뜻밖에 자폐인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에 주목했다. 오티스타의 출발점이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폐인 중에는 그림을 좋아하고, 또 잘 그리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자폐라는 장애로 인해서 시각적인 기억력이나 표현력이 뛰어나게 발달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자폐인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여과 없이 그려내요. 계산적이지 않다고 할까요? 무섭고 험상궂은 맹수들은 한없이 선한 표정이죠. 칙칙한 담벼락과 거리도 일곱 색깔 무지개빛으로 옷 입혀지고요. 그래서 저는 자폐인들에게 단순 획일화된 노동보다 스스로의 재능을 키워가는 방향으로 복지의 길을 열어주고 싶었습니다.”실제로 오티스타를 통해 나온 자폐인들의 작품은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대개 장애인들은 도움을 받기만 하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의 오해를 몸소 반박하는 셈이다.

자폐인들도 탄탄한 능력을 기반으로 사회에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 이 대표는 오티스타의 비전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귀한 목적을 갖고 창조하셨음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성경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구절은 서로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뜻이 아닐까라고 전했다.

오티스타의 한 자폐인 디자이너가 작업 중인 모습.
오티스타의 한 자폐인 디자이너가 작업 중인 모습.

당당한 자립, 가족에게는 희망
현재 오티스타는 자폐인들을 전문 디자이너로 육성하고자 디자인 스쿨도 운영 중이다. 특수교육 선생님들의 지도 아래 무료로 진행되는 수업을 통해 자폐인들은 디자이너로서의 적성과 자질 등 업무 능력을 키운다. “제일 먼저는 자폐인들이 그림을 정말좋아하는지를 살핍니다. 디자인을 평생 업으로 삼을 이들이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기만 하면 안 되잖아요. 안 그래도 자폐인들은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는 성향이 있다 보니 회사의 요구를 수용해 상품이 될 만한 디자인을 훈련하는 것 역시 저희의 역할입니다.”

직무능력과 더불어 사회적응 기술까지 가르치는 오티스타는 진로·진학·고용과 관련해서도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관련 분야로 진학을 희망하는 자폐인들에게는 포트폴리오 제작을 돕고, 오티스타 외에도 취업할 여러 기업들을 탐색·연계해주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제까지 상당수 자폐인들이 일반 영리기업에 직간접적으로 채용됐다. 그는 흔히들 자폐인은 의사소통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들도 사회에 나가면 얼마든지 제 몫을 다 한다. 여기저기 취업해 일하는 디자이너들을 보면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발전해간다고 귀띔했다.

독특한 매력을 가진 오티스타 제품에 소비자들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사실 자폐성 장애인들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특성을 지닙니다. 그런데 이걸 다르게 해석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만큼 순수하다는 거예요. 알록달록 색감과 밝고 따뜻한 분위기의 디자인에 장애인들을 돕고 싶어서가 아니라 갖고 싶어서구매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자폐인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걸 확인했다는 게 어쩌면 오티스타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만큼 오티스타가 안정화되기까지 이 대표는 그동안 무척 고된 세월을 지나야 했다. 교수로서 경영 일선에 뛰어들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은 물론, 매 달마다 꼬박 직원들에게 월급을 챙겨줘야 하는 입장에서 수익에 대한 압박도 컸다. 오죽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하나님! 왜 하필 저죠? 제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요?”라며 기도로 묻고 따진 날도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자폐인 디자이너들과 그 부모, 그리고 직원들이 눈에 밟혀 더 힘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해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자폐인들, 그리고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립을 이뤄내는 자녀의 모습에 희망을 품고 기뻐하던 가족들을 보니 차마 그만 둘 수 없었어요. 아니, 오히려 제가 더 감사했죠. 그래서 다짐한 게 언젠가 내가 그만 두거나 오티스타가 망해서 멈추거나 결국 결과는 똑같은데 그럴 바에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까지는 고민 말고 그저 최선을 다하자였어요. 그래도 안 되면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려니 여기고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기부문화 두 번 나눔
오티스타는 전 세계에 자폐인 디자이너들의 역량을 알리고 경쟁력을 제고하고자 미국 뉴욕 국제 선물 박람회’ ‘K-Socioal Brand Show’ 등 국내외 유수의 전시 및 박람회에도 적극 참여해왔다. 또한 해외 출품은 물론 국내 일반 팬시점에도 두루 입점 중이다. 대기업·공공기관과의 콜라보도 활발하다. 기업들이 일회성 지원이 아닌 자폐인의 재능 재활이란 취지에 공감한 것. 삼성전자 휴대폰 케이스를 디자인하거나 화장품 브랜드숍 아이소이와 디자인 협업을 하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오티스타의 제품이 흘러 들어갔다.

한편, 수익금을 고스란히 자폐인의 자립을 위해 사용하는 오티스타는 기껏해야 몇천 원에서 몇만 원 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도 여러 번 받았다. 이에 이 대표는 안정적인 매출을 창출하는 두 번 나눔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매달 후원자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오티스타 제품을 구매한 뒤, 그들이 지정한 선교지나 사회단체로 다시 기부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소중한 한 번의 기부로 두 번의 나눔을 실천하게 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헌인 셈이다.

덕분에 그간 잊지 못 할 간증들도 많았다. 한 신혼부부는 결혼 축의금으로 새터민 학생들과 비영리시설 아이들에게 오티스타의 예쁜 공책을 선물했다. 이 밖에도 해외 선교지를 비롯해 보육원, 미혼모 시설 등에 기부의 손길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는 기부란 주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번은 보육원 아이들에게 갖고 싶은 물건을 직접 오티스타 홈페이지에서 고르도록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텀블러, 머그잔 등 다양하게 원하더라고요. 이후 보육원에서 편지를 보내왔는데 매번 똑같은 색, 똑같은 모양의 티셔츠만 기부 받다가 아이들이 자신이 직접 고른 물건을 선물 받으니깐 너무 좋아했다. 아이들에게 존중 받는 느낌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 적혀있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보람차고 행복해요.”

이렇듯 모두가 차별 없이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오티스타. 끝으로 이 대표가 그리는 오티스타의 미래와 비전은 무엇이었을까. “오티스타가 자폐인을 포함한 많은 장애인들이 총체적인 지원을 받는 허브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자폐인은 물론 그 어떤 이유로든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이 취업뿐만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서 다양한 정보와 지원을 받으면 좋겠어요. 그리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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