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의 변화는 성령의 인도와 함께 자신의 ‘성찰’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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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의 변화는 성령의 인도와 함께 자신의 ‘성찰’이 있어야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09.28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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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31) -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잠 25:6)

지혜의 길을 걷기 원하는 우리 역시 전수된 지혜를 배우고 실천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지혜를 다듬고 발전시켜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25~27장은 궁정의 처신방법에 대해 상세히 다룬 22~24장의 주제를 이으면서도 더 넓게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고 잠언 전체를 통틀어서도 돋보이는 풍부한 그림언어를 구사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25:11),”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25:12), 오늘 살펴볼 6~10절 역시 궁정의 배경을 느끼게 하지만 인생에서 겪는 일반적 상황에 충분히 적용되도록 일반화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 뭐라도 된 양 거들먹거리며 높은 이들 곁을 맴도는 자는 결국 수치를 당하게 되고(6~7절), 자기와 다툼이 있다고 비겁하게 이웃의 비리를 폭로하면 사람들의 비난과 악평을 초래할 뿐이라는 말씀은 얼마나 생생하고 현대적인지요(8~10절).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라.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을 꾹꾹 눌러 강조합니다. 높아지기 원한다면 떠벌이고 자랑을 쏟거나 자신의 가치를 부풀리려 하지 말라는 역설적 충고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알아보고는 상석으로 오시라 권하는 편과, 미리 나서서 상석에 갔다가 인정사정없이 말석으로 떠밀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고 양자택일하라는 말씀이 촌철살인입니다. 언젠가 식당에서 일행들에게 엄청 아는 척하고 거드름 피는 사람을 보며 가소로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필 제가 상당히 잘 아는 내용을 틀리게 말하고 있길래 ‘아이구 뭣도 모르면서 저렇게 호기를 부릴까’ 한심해했는데, 어느 날 보니 그게 제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옆자리 사람에게 자신 있게 설명해주었던 내용을 나중에 찾아보니 엉뚱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겉으로는 정중히 상대를 대하면서도 속으로는 나보다 저 아래에 있는 당신에게 이렇게 예의바른 나는 얼마나 겸손하고 훌륭한 사람이란 말인가… 솔직한 교만보다 더 못된 비틀린 심정이 숨어있는 것을 보게 될 때는 얼마나 참담한지요.

이웃과 다투는 상황이 온다면 논쟁은 하되 그의 치부를 소문내는 짓을 말아라(9~10절). 물론 제가 그런 저급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지요. 언젠가 누군가에게 갑작스런 공격을 당했습니다. 제 잘못도 아닌 일로 터무니없이 모욕감을 준 그 사람을, 저는 정중히 대해드리고 오해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고 목사인데 그리 해야 마땅하지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우연히 다른 분이 동일한 사람에게 비슷한 일을 당해 억울했었다는 말을 듣자 10분이 지나기 전에 제가 당한 일은 물론 제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은 분이 알지 못하던 다른 일화까지 들먹이며 비난에 공조하고 있는 제 모습에 환멸을 느껴야 했습니다.
잠언 말씀은 제 인격의 실상을 드러내어 부끄럽게 하고 변화를 촉구합니다. 물론 깨달음만으로 인격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누추한 제 인격이 변하려면 기적이 필요하고, 성령님의 지시에 지속적으로 순종하여 제 안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성찰하고 변화의 필요를 시인하지 않으면서 초자연적 역사가 일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말씀을 믿는 태도가 아닙니다. 잠언 말씀은 우리 지성에게 생각하라 말씀하시고 우리의 의지에게 일어나 행동하라고 다그치십니다. 겸손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실상을 마주할 때 느끼는 실망을 넘어 하나님을 의지할 때 변화가 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변화와 성장의 기회이니까요.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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