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과 배려, 겸손과 협력이 있는 지식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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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과 배려, 겸손과 협력이 있는 지식이 ‘힘’이다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09.15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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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30) -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잠 24:6. 개역)

“지식이 힘이다”라는 격언은 16세기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한 말로 종종 인용됩니다. 이 말이 나온 본래의 맥락은 자연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주체로서의 인간 지성에 관한 논의였습니다만, 지식과 정보의 가치가 높아진 현대사회에서는 본래의 철학적 맥락을 넘어 일상적 표현이 되었고 정보기관들의 모토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지식이 힘이다”의 원조라고 할 잠언 24:5~6은 명백하게 지식과 지혜를 전쟁터에 위치시키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 5절의 히브리어 원문에 난해한 점이 있다 보니 여러 현대역본들이 5절을 “지혜 있는 자가 힘 센 자보다 강하고 지식 있는 자가 무력을 쓰는 자보다 강하다(현대인의성경)” 즉 “지력이 완력보다 강하다”는 방식으로 풀고 있습니다만, 다소 투박한 직역에 가까운 개역개정 본문도 충분히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혜자는 강하고, 지식인은 힘을 키웁니다. 냉철한 판단이고 진실입니다. 지식은 힘입니다. 직전 문맥인 3~4절도 이러한 해석을 강화해줍니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집이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우리 삶에 대한 비유라고 전제할 때, 인생 설계에는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지식과 지혜를 가져야 풍요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이니 과연 지식이 재산이고 지혜가 힘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식은 곧 힘이라는 메시지가 전부라면 무언가 석연치 않습니다. 잠언 1장에서 시작해 24장에 이른 독자라면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미련한 짓이고, 참된 지혜는 의로움과 분리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기초이자 완성이라 배웠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24장을 보면 5절 말씀 주위에 힘의 숭상과는 거리가 먼 가르침이 수두룩합니다. 죽을 처지가 된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12절), 원수의 몰락을 내심 기뻐하지 말라(17절), 악인들을 향해 노여움과 시기심을 품지 말라(1절, 19절)가 그것입니다.

지식이 힘이긴 하나 그 힘을 바르게 쓰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다른 이들을 향한 연민과 배려입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살려내려 애써야 마땅합니다. 경쟁에서 이겼어도 패배한 상대를 조롱해선 안 되며, 나를 미워하고 해친 사람이 넘어지면 손을 내밀지는 못할망정 고소해하지는 말라 하십니다. 심지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더라도, 원수의 몰락을 기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로 옮겨질 수 있다니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17~18절). 둘째는 겸손과 협력입니다. 지혜로운데 교만하면 지혜가 없느니만 못합니다. 교만은 이웃과 공동체를 해치고 자신도 망하게 합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모사가 많아야 하는 이유입니다(6절). 잠언이 말하는 모사는 도움을 주는 지혜자로 높이 여길 대상이지 한갓 부하나 참모가 아닙니다. 어둠 속에 있는 백성을 위해 오신 주님의 이름이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사 9:6).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이, 이웃을 섬기고 공동체를 세우는 배려와 겸손의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지혜가 힘이 되고 승리가 되도록 허락하십니다. 당신에겐 모사가 많습니까?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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