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용어’에서 유래…성경에도 존재하는 ‘부캐’
상업적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사역적 가치
MBC의 간판 예능으로 자리 잡은 ‘놀면 뭐하니’는 출연자인 유재석 씨의 변신이 프로그램의 핵심 정체성이다. 유재석 씨는 드럼신동 ‘유고스타’를 시작으로 트로트 신동 ‘유산슬’, 라면요리사 ‘유라섹’, 혼성그룹 맴버 ‘유두래곤’ 등 새로운 정체성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이끌고 있다. 이른바 ‘부캐’ 현상이다.
‘부캐’란 ‘부캐릭터’의 줄임말로, 지금까지는 인터넷 게임에서 주로 쓰였다. 쉽게 말해 본래의 캐릭터 외에 또 하나의 캐릭터를 생성하여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다. 유재석 씨가 불을 지핀 연예계의 ‘부캐 현상’은 개그맨 김신영 씨가 ‘둘째이모 김다비’라는 캐릭터로, 개그맨 추대엽 씨가 ‘카피추’라는 캐릭터로 변신하면서 연예계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카피추’의 경우 부캐가 본캐보다 유명해진 대표적인 경우다.
사역 현장에 펼쳐진 ‘부캐’
꿈의교회 담임 김학중 목사는 교계에 대표적인 ‘부캐 사역자’다.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는 별도의 활동명을 가지진 않았다. 하지만 ‘부캐’인 방송인으로서의 페르소나가 지역교회 목회자인 ‘본캐’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부캐’인 방송인 사역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확장성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 “방송인으로 활동하기 전에만 해도 ‘목사’하면 엄숙하고 진지하고 근엄한 이미지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면을 깨려고 했습니다. 방송을 하면서 따뜻한 사람, 공감하는 사람으로 다가가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실제 교회 사역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상처 받고 아파서 교회 문턱을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던 사람들이 저희 교회에는 기꺼이 찾아왔거든요. 저의 방송에서의 모습을 보고 신앙생활의 희망을 찾았다고 합니다. 또 전도하기도 쉬웠습니다. 교회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던 사람들이 저의 그런 모습을 보고 교회에 쉽게 다가오고 정착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방송인 김학중’이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 목사는 최근 자신을 찾아온 A 목회자와의 대화에서도 ‘부캐’의 장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목회가 전혀 안 되는 상황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공사현장에 나가 일을 하게 된 A 목사는 그곳에서 의외로 삶의 활력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삶의 활력도 생기고,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목회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얘기였죠. 그러면서 목회의 즐거움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A 목사님은 ‘부캐’ 활동을 통해 목회의 전환점을 얻은 거죠.”
그러면서 김 목사는 ‘부캐 활동’을 적극 권장했다. 그는 “취미도 좋고, 좀 예민한 문제지만 ‘이중직’도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목회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오히려 ‘부캐’ 활동으로 얻는 게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로트 사역자 ‘민수기’
2인조 CCM 듀오 ‘소망의 바다’ 출신의 민호기 목사. 민 목사는 지난해 말 ‘민수기’라는 ‘부캐’로 활동을 시작했다.
민 목사는 “그간 자신의 주 사역 대상이 청년과 청소년이었다면 본인도 나이를 먹으면서 장년 집회에 초대되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러던 중 인천의 한 교회에서 70대 할머니 권사님들이 모인 집회에 서게 됐고, 그날 잠깐의 이벤트를 위해 전날 밤 급하게 만들어서 불렀던 트로트 CCM ‘주님은 내 보험’이 현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민 목사는 “처음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호응을 얻으면서 음원작업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유재석 씨가 ‘유산슬’로 활동하기 전이었다. “유산슬이 워낙 유명해져서, 제 입장에서는 ‘따라쟁이’가 된 것 같아서 속으로 찔끔하기는 했지만 그런 것들을 마음에 두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실제로 교회 현장에서는 어른세대들이 좋아해주십니다. 심지어 올해 여름 캠프에 가서도 많이 불렀는데, 워낙 트로트가 유행이라서 그런지 청소년들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민 목사는 “이전까지는 트로트에 대해 솔직히 음악적으로 낮게 취급했던 경향이 있었는데, 작업을 해보니 트로트만의 색깔이 있더라”며 “많이 배우게 됐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이 곡을 영국의 유명 스튜디오인 ‘에비로드’에서 작업했는데 현장의 유명한 음향 감독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고 전했다.
트로트 곡인 ‘주님은 내 보험’이 발표된 뒤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민 목사는 “키치적(미학에서 보기 괴상한 것, 저속한 가치를 말함)인 즐거움을 주기 위해 곡을 썼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니 세상에 보험처럼 여기던 것들이 다 무너지고 주님만이 참된 우리의 보험이라는 가사가 피부에 더 와 닿더라”며 “기독 문화는 점잖고 경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계기가 됐다. 트로트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터치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 이런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후속곡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