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강권하시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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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강권하시는 사랑
  • 박재신 목사
  • 승인 2020.08.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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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신 목사/은혜광성교회

“외치노라 나 믿는다고 주의 이름 담대하게”로 시작하는 복음성가를 즐겨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찬양가사는 우리들이 세상을 향하여 크리스천임을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재 확산의 원인이 교회로 지목되다보니 어떤 분들은 “I’m sorry, I’m a christian”이라고 말하고 있는 현실에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예수님 믿는 것이 기쁨이요, 자랑거리요, 자부심이 되어야 하는데 창피한 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3절과 14절 상반절을 보면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바울 사도는 고백합니다. 복음을 증거하다가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멸시와 조롱을 당하여도 좌절하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명을 감당하는 까닭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들을 강권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권’이란 강할 강과 권할 권으로 ‘내키지 아니한 것을 억지로 권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에는 포기하고 싶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에 그 사랑이 우리들을 강제하고 있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때 가장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들을 강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세상에서 우리들을 조롱하여도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들은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고 십자가의 죽으심을 당하신 대속의 사랑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 대속의 사랑을 단지 ‘기독교의 공식’처럼만 생각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공식이란 어떤 문제를 풀 때 시간을 절약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공식에만 젖어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공식에 대입하여 문제를 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작 공식을 약간만 변형해도 문제를 풀지 못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이 마치 공식처럼 받아들이게 되면 대속의 은혜가 감동이 되지 못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는 사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머리로만 대속의 사랑을 알면 정작 삶으로의 변화는 일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힘을 잃은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단지 머리로만 아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내 은혜가 되고,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결단의 은혜가 되어야 하는데 머리로만 배운 은혜가 되다보니 힘을 잃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심을 마음속 깊이 깨달아 세상을 이겨야 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얼마나 지치고 힘이 드십니까?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니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하지만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면서 하셨던 말씀,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는 말씀을 명심합시다. 이리떼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우리들은 뱀같이 지혜롭게 복음증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비둘기 같이 순결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 때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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