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통치 아래 세상이지만, ‘규범과 질서’ 반드시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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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통치 아래 세상이지만, ‘규범과 질서’ 반드시 지켜야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08.18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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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26) -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잠 23:11)

지혜의 스승이 아들(제자)에게 주는 권면의 말은 그 자체로도 소중합니다만 그 말이 잠언서, 즉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수록되면 전혀 다른 차원의 가치가 덧입혀집니다. 잠언 22~24장 중 이집트 지혜문학과 유사한 내용들 역시 그 교훈들이 잠언서의 새 문맥 안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주목해야 비로소 참된 의미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이 섹션에서 스승은 제자에게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가르침을 베푼다고 설명합니다(22:21).


개역개정에서 ‘진리의 말씀’으로 옮긴 어구는 언어 표현만 아니라 신뢰할 만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말씀의 진리를 흡수하면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익히면 지식이 제 자리를 찾습니다. 하나님 경외를 강조하는 잠언 1:9과 9:10은 그래서 잠언서를 이해하는 해석의 전제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겉보기에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다루는 구절들도 순종해야 할 영적 교훈으로 받아 영적인 유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섹션의 첫 교훈이 그 좋은 예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갈취 억압하지 말라는 내용은 보편적인 윤리규범에 해당하지만, 잠언은 그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동기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습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질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
약하고 곤고한 사람의 것을 빼앗으면 주께서 네 가진 것을, 생명까지, 빼앗으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처벌의 정도가 아니고 처벌의 주체를 밝히는 데 있습니다. “네가 어려운 사람을 빽 없다고 무시해? 내가 그 사람 빽이다. 넌 날 건드린 거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뜻입니다.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라(23:10)” 역시 이집트 지혜와 유사하다고 인용되는 구절입니다만, 잠언서에서는 “[왜냐 하면]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는 11절의 동기절이 첨부되어 야훼 신앙의 틀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외국문헌 혹은 고전사상으로 여겼을 법한 ‘세상적’ 내용 안에서 이미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진리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세상’의 규범을 자신과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거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지식을 하나님께 적대적인 비진리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지만 지식은 하나님께 복종합니다. 모든 선한 원리와 사실에 근거한 지식은 창조세계의 질서 안에 드러내신 하나님의 섭리에 근원을 둔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나쁜 사람들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신비의 영역을 믿지만 상식과 사회질서, 공공윤리를 존중하고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세상을 운행하시는 방법임을 받아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자신이 속한 교회가 하나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을 믿기에 국가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 있게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부르심 앞에 선 사람들입니다. 온 국민이 불안과 고통을 느끼며 사는 어려운 시기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겸손과 성실로 참다운 신앙을 살아내야, 연약한 이들의 호소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맺힌 마음을 풀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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