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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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
  • 정석준 목사
  • 승인 2020.07.07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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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 103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21세기에 상당한 직업군이 사라지게 되는 경고가 있는 상황이다. 염려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다. 과거 수천 년의 역사를 생각하면 갑작스런 것도 아니다. 매번 혁명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익숙히 듣거나 던졌던 것 중의 하나다. 신학교 강의 첫 시간에 “여러분이 졸업할 시기에 기독교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20살 어린 나이에 걱정이 더해져 한 동안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목회말년에 이를수록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지금은 나의 위치 시간 및 심지어 관심사까지 고스란히 인터넷에 노출 되어 있다. 편리함을 넘어 꿈같은 현실을 살고 있다. 이 세상 어디로 도망을 가거나 숨을 수 없다. 엄격히 말하면 정작 살고 있는 나는 없는 듯한 4차 산업시대에 존재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몇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가 모두 드러난다. 상상 속에 막연한 일들이 성큼 현실이 됐다.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성경적 신앙생활의 매뉴얼이 준비돼야할 시점이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여 ‘한국판 뉴딜정책’이 발표됐다.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포기하고 국가가 개입하여 경제문제를 해결한다(The New Deal was a series of programs, public work projects, financial reforms, and regulations)는 취지로,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enacted by President Franklin D. Roosevelt in the United States)에 의해 추진됐던 정책이다. 그러나 ‘경제 성장의 활성화’를 이뤘다는 반면에 오히려 ‘성장 둔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무엇’보다 ‘누가’ ‘어떤 생각으로’가 우선이란 말이다. 로봇처럼 사람에게도 무수한 정보가 입력되면서 출력이 되기 때문이다. 

도덕적 자아의 개성과 재능의 소양을 가진 자로 이끌어내는 것이 교육의 원리다. 그러나 현재는 ‘인간을 키우는 교육’에서 짐짓 벗어나 있다. 이미 모양의 갖춤 속에서 성공맞춤형으로 찍어지듯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출현보다, 어떤 길러짐의 바탕 속에서 형성된 인격체가 더 두렵고 섬뜩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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