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의 남녀구분이요? 이제는 사라질 옛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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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의 남녀구분이요? 이제는 사라질 옛말이죠”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0.04.29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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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기획 - 오해와 이해 : 나는
□ 입니다-⑨ 변화하는 직분 ‘여자 전도사’
2015년 개봉한 영화 ‘인턴’에서는 젊은 여성CEO와 그를 보좌하는 고령의 남성 인턴의 아름다운 우정을 다뤘다. 영화에서처럼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지위는 갈수록 상승하고 있지만 교회 내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열악하다. (사진출처:영화 ‘인턴’)
2015년 개봉한 영화 ‘인턴’에서는 젊은 여성CEO와 그를 보좌하는 고령의 남성 인턴의 아름다운 우정을 다뤘다. 영화에서처럼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지위는 갈수록 상승하고 있지만 교회 내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열악하다. (사진출처:영화 ‘인턴’)

남녀 사역자 고정관념 버리고 ‘협력’ 모색해야
세상과 다르지 않는 ‘경력단절’의 두려움은 숙제

 

한국에서 첫 번째 여성목사를 배출한 지 9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감리교에 이어 예장 통합과 백석이 여성 안수를 허용하면서 ‘금녀의 벽’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목회는 남성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여성 목회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예장 통합 교단도 1년에 안수를 받는 여성 목사는 남성의 5분의 1에 그친다. 특이한 점은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하는 교단에서도 적지 않은 여성들이 목사 안수 대신 ‘전도사’라는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젠더 감수성’이라는 말이 보편화될 만큼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여전도사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역의 영역을 제한받고 있다.


여성은 전도사로 만족하라?

국내 최대 교단으로 꼽히는 예장 합동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여성 목사가 없다. 교단 신학교에서 많은 여성 신학생들이 남학우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고 졸업하지만 교단법에 따라 이들은 ‘목사’가 아닌 전도사에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목사와 전도사 간의 사례비를 차등 지급하고 있고, 사역의 영역에서도 엄연한 구분이 존재한다. 전도사는 안수 기도를 할 수 없을뿐더러 성찬과 세례를 집행할 수 없다. 

예장 합동 소속의 A 전도사는 50대 여성이다. 20년이 넘게 교단에 남아 전도사로 사역해왔지만 마음 속에는 늘 불편함이 존재한다. 그는 “여성들의 능력이 결코 남성에 비해 떨어지지 않음에도 사역에서 늘 차별을 받아 왔다”며 “목사 안수를 주지 않아 많은 동기·선·후배들이 타교단으로 떠나고 있다. 심각한 인재유출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A 전도사는 특히 “여성 전도사들의 역할은 늘 심방이나 교육부서, 특히 어린 연령대로 한정되어 있다”며 “아무리 오래 사역을 해도 목사와 전도사는 차이가 많다”고 했다. 그는 또 “가끔은 나이가 어린 신학교 후배인데도 목사라는 이유로 여전도사에게 함부로 대하는 인격적이지 못한 분들이 있다”고 토로했다. 


여성 스스로 한계 짓지 말아야

A 전도사는 “한국교회가 여성 사역자들에게 ‘부드러움’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순종적으로 담임목사님 말만 잘 들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팽배하다”며 “심지어 여성 사역자들 스스로가 남성들의 입맛에 맞추려 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다”며 “때로는 강함도 필요하다.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서로 협력하며 가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백석 신대원 6학기에 재학 중인 김지은 전도사(32)도 이같은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여성 안수를 허용하고 있는 교단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주변 여 전도사들을 보면 본인들의 영역을 ‘교육’이나 ‘상담’으로 한정짓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저 스스로도 교육에 특화된 목회를 꿈꾸는 입장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교육이나 상담 외에는 애초에 꿈도 꿔보지 않는 분위기랄까요. 신대원에서도 선택과목이 개설되면 교육이나 상담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성경연구나 조직신학 등은 당연히 남자 원우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소문’ 그리고 ‘육아’

김 전도사는 ‘여자 전도사’로서 사역에 가장 신경을 쓰는 것 중의 하나로 ‘소문’을 꼽았다. 특히 “미혼의 남자 청년과 조금만 친밀한 모습을 보여도 ‘뒷말’이 나오더라”며 “사역자의 연애를 둘러싼 인식이 남자 전도사들에 비해 안 좋으면 안 좋았지 결코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주변 여 전도사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러다보니 들어오는 소개팅은 거의 같은 전도사거나 교역자”라고 말했다. ‘여 전도사’라는 특수성이 ‘연애’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얘기다. 김 전도사는 “여 전도사는 일반인을 만나면 안 되는 것이냐”며 “막상 전도사들끼리 결혼한 경우를 봐도 고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 했다.

전도사 커플이 겪는 가장 큰 고비는 ‘육아’다. 부부가 모두 주일 사역을 한다고 하면 아이를 맡길 시설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 대부분의 부모가 주중 업무를 위해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반면, 이들은 주된 사역이 주일을 비롯한 주말에 이뤄지기 때문에 양가 부모님의 절대적인 지원이 없다면 둘 중 한명은 사역을 포기해야 한다. 

김 전도사는 “제가 아는 전도사님 커플들을 보면 사역을 포기하는 쪽은 거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며 “이런 현실을 알기 때문에 주변의 여 목사님들은 후배들에게 결혼을 강하게 권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출산 후 복귀도 만만치 않다.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경력 단절’이 교회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 그는 동료 사역자의 출산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일을 회상하며 “차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교회 안에서 가임기 여성들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간다. 더불어 많은 여전도사들이 결혼 대신 싱글을 택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으로 얼마 전 일선에서 은퇴한 강귀숙 전도사도 ‘골드 미스’다. 그는 목사 안수를 받을 기회도 있었지만 지난 35년의 사역을 돌아보면 “그래도 은혜”라고 했다. 

“보통 여 전도사들은 심방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성도들 살림 속속들이 다 압니다. 우스갯소리로 누구 집에 수저 몇 개인지 안다 할 정도로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말을 함부로 하면 교회 안에서 분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 입에서 나오지 않는 이상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쁜 말이 나올 때는 입을 자동적으로 다물었어요. 그만큼 여 전도사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여자 전도사라는 자리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후배 전도사들에게 이렇게 조언하고 싶어요. 직분보다는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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