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와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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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와 쉼표
  • 박노훈 목사
  • 승인 2020.04.0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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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훈 목사/신촌성결교회

어느 이른 아침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들 손에는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 드리려고 구입한 향료가 들려 있었습니다. 길을 가는 이 여인들에게는 그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덤을 가로 막고 있는 저 거대한 돌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돌을 옮겨 주리요”(막 16:3).

죽음은 거대한 돌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모든 희망의 끝이요 마침표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바울은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세 여인이 눈을 들어서 바라보니 놀랍게도 거대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습니다. 주님이 다시 사신 것입니다. 천사는 예수님의 무덤가에서 여전히 머뭇거리는 여인들을 향해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 찾느냐” 하였습니다(눅 24:5). 

예수님의 부활은 마침표가 쉼표로 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마침표를 찍는데, 주님은 그 마침표를 쉼표로 바꾸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아마 예수님의 말씀을 나사로만큼 실감나게 경험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무덤가에서 그를 부르실 때 마침표가 쉼표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 살 된 딸도 죽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이에게 다가가셔서 “달리다굼”이라 말씀하시며 아이를 깨우셨습니다. 달리다굼은 ‘아이야, 일어나라’하는 뜻의 아람어입니다. 아람어는 이스라엘 민족의 언어입니다. 열두 살 소녀에게 ‘달리다굼’이라 아람어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는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요? 

모두가 끝났다고 말할 때, 주님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오늘 절망에 빠져 있는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 민족을 부르십니다. 실패와 좌절, 아픔과 고통, 죄와 절망에 사로 잡혀있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아이야 일어나라!” 우리의 끝은 죽음이 아닙니다. 절망이 아닙니다. 우리의 끝은 구원이요, 마지막은 생명입니다. 

비록 코로나19 사태가 저 거대한 돌처럼 우리에게 절망을 느끼게 할지라도 그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아야 합니다. 눈앞의 절망에 마침표를 찍지 않도록 희망을 가지십시오. 이미 마침표가 찍혀 있다면 쉼표로 바꾸십시오. 2020년 부활절, 절망의 마침표를 소망의 쉼표로 바꾸어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우리 민족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위한 우리의 열심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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