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희년' 아닌 삶으로 실천하는 교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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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희년' 아닌 삶으로 실천하는 교회가 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0.02.2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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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예배당 떠나는 포도나무교회를 가다
‘임대료’ 대신 ‘교회다움’에 지출할 것 기대
교회력‧성례전‧말씀암송 강조…전 세대가 함께
포도나무교회 교인들. 교회는 ‘온세대 예배’를 통해 전교인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신앙의 전수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포도나무교회 교인들. 교회는 ‘온세대 예배’를 통해 전교인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신앙의 전수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흔히들 한국교회에서 안식년이라고 하면 목회자 개인이 잠시 사역을 떠나 재충전하는 시간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이 안식년을 교회 전체 차원에서 지킨다면 어떨까. 물질만능주의의 풍조가 교회 안으로도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안타까운 세태 속에서 레위기의 희년정신을 실천하는 교회가 있다. 대한민국 교육열의 상징 대치동에서 작지만 강한 교회를 일궈가고 있는 포도나무교회(담임:최현기 목사)를 찾아가 봤다.

 

임대료가 교회다움을 방해한다면

대치동 학원가 한 가운데 포도나무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교회는 지하에 예배당을 두고 1층에는 지역사회를 위한 카페 하예성을 운영하고 있다. 작지만 특색 있는 사역으로 교회가 점차 이름을 알렸고 카페 또한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순항중이다. 특히 인문학 모임이 열리는 카페는 입소문을 타고 믿는 않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각광 받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교회는 최근 뜬금없는 방 빼선언을 했다. 현재의 공간을 벗어나 공유 경재 개념의 '엔스테이블'에서 당분간 예배를 드릴 계획이다. 교회 개척 7년만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다움의 추구다.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현기 목사는 박사과정에서 레위기를 전공했다. 재정 자립은 진작 이뤘지만 치솟는 임대료는 교회를 교회답게 일할 수 없게 하는 높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었다. 임대료가 오를수록 레위기의 '희년' 정신을 지키기는 어려워졌다.

최 목사는 교회와 카페의 임대료를 합치면 매월 500만원이 넘는 비용이 지출됩니다. 이 문제는 교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젊은 부부들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라며 교회가 임대료 지출을 줄이려는 것도 교인들과 함께 희년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시대 성도들에게 중요한 두 가지가 바로 내 집 마련자녀 교육입니다. 거기에 교인들이 모든 비용을 다 쓰지요. 이 두 가지로 인해 신앙의 자세도 바뀌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포도나무교회는 재테크를 통한 수익 창출을 지양한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더 많은 대출을 받게 되고, 대출을 갚기 위해 다른 모든 일들은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녀의 학원비를 위해 더 많은 돈을 주는 직장을 찾고, 그로인해 가정에 소홀해 지는 것을 경계한다. 최 목사가 설교를 통해 누차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설교에만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까지 제시한다. 학원에 다니지 않고 어떻게 공부시킬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다. 전문가들의 소스를 가져다가 나누고 직접 실행에 옮긴다. 최 목사 가정부터 자녀 교육을 홈스쿨링으로 전환했다.

 

뼈아픈 반성에서 시작된 교회개척

포도나무교회의 지향점은 확장이 아니다. 작지만 건강한 교회, 스타 목사 한 명으로 인해 덩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예배를 통해 성장을 이루는 교회를 꿈꾼다. 이런 목표에는 최 목사의 과거 경험이 바탕이 됐다. 전병욱 목사 재임 시절 삼일교회 부목사로 사역했던 최 목사는 그곳에서 소위 촉망 받는교역자였다당시 알고 지낸 교인들은 경쟁을 강조하던 삼일교회 사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부목사로 그를 기억했다. 그곳에서 사역을 그만두고 중국의 한인교회로 옮겼을 무렵 삼일교회에서 벌어진 참담한 소식을 듣게 됐다.

중국에 있는 동안 성찰을 많이 했습니다. 고국의 섬기던 교회에서 일이 많이 터지면서 내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 성례전을 강조하게 된 것도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습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목사 한 명에 의존하는 것은 신학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레위기의 제사 순서를 보면 설교자와 청중의 관계보다 예배자 한 명 한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바로 그런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교회가 성례전 만큼이나 강조하는 것이 바로 온세대 예배. 최 목사는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각 연령별로 나뉜 부서별 예배를 드리면서 세대 간 단절과 이로 인한 다음세대로의 신앙계승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이 교회에서는 온 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린다. 성례전에 함께 참여하고 여운학 장로의 ‘303 성경 암송으로 전교인이 성경을 암송한다. 설교 시간만 연령대별로 흩어지고 소그룹 모임과 가정예배까지 같은 구절로 진행한다.

미술과 교육을 전공한 이 전도사는 직접 교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눈높이 교육을 실시한다. 최근에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레위기 동화를 직접 제작하고 있다.
미술과 교육을 전공한 이 전도사는 직접 교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눈높이 교육을 실시한다. 최근에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레위기 동화를 직접 제작하고 있다.

성경암송을 강조하는 것은 가정예배를 통해 다음세대 신앙교육과 가정 회복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포도나무교회의 모든 성도는 매일 말씀을 암송하고 주1회 이상 암송가정예배를 드린다. 이를 통해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영성을 훈련하며 자녀들의 신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각 가정의 부모가 교육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교회력의 절기를 지켜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시간을 삶으로 경험하게 돕는다. 주일예배의 본문을 교회력에 따라 구성하고 주일에 들은 본문 말씀을 주중 가정예배에서 다시 반복하되, 단순히 말씀만 읽고 가르치는 지식전달에 그치지 않고 말씀과 관련된 오감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 기도 나눔, 봉사와 실천 같은 5가지의 신앙 영역으로 말씀을 입체적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최현기 목사와 아내 이민주 전도사.
최현기 목사와 아내 이민주 전도사.

 

7년에 한 번 교회도 안식한다

포도나무교회는 올해 자체적으로 희년을 선포했다. 목회자 개인의 안식년이 아닌 교회 차원의 안식년으로 삼는다는 것. 보통 안식년이라고 하면 전면적인 사역의 멈춤을 뜻하지만 포도나무교회에서 말하는 안식년은 기존 사역 외에 새로운 것을 늘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안식년의 기본 개념대로 목회를 심화, 발전, 확장하는 일을 멈추고 안식의 시간을 가지면서 이후 펼쳐질 양상을 기대한다는 각오다. 마침 임대료 문제로 예배당도 떠나게 됐으니 땅을 쉬게 한다는 희년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교회는 앞으로도 매 7년마다 같은 의미의 안식년을 지켜나갈 계획이다.

한편 예배당을 옮겨 향후 공유공간으로 교회를 이전하게 되면 기존에 나가던 임대료를 어디에 쓸지를 고민하고 있다. 우선 2년가량 재정을 모아 작지만 교회가 맘껏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그리고 현재의 탈북민 사역 미혼모 사역 선교 후원 각종 단체 후원뿐 아니라 새로운 나눔을 늘려갈 방침이다.

당분간 불편함은 피할 수 없겠지만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더욱 건강한 교회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최 목사와 함께 교회의 교육 전도사로 동역하고 있는 아내 이민주 전도사는 지금까지도 예배당 주소만 있었을 뿐 안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교회가 내적인 양육과 함께 동시에 지역사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놓쳐선 안 되는데, 교회의 이름으로 된 공간이 사라짐으로서 지역사회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될 상황이 펼쳐지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최 목사도 무형의 교회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강소교회로서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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